문장의 힘
2025. 4. 13 (일)
휙~ 아이디어가 항상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해 메모하지 않는다면 저 멀리 날아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언제 내 안에서 불쑥 솟구쳐 바람처럼 지나갈지 모른다. 방금도 뭔가 스쳐 지나갔는데 다른 일을 하느라 메모를 못했다.
일을 마치고 떠올리려고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깝다. 솟구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이끌고 와 애쓰지 않아도 원고지를 메꿀 수 있게 해 준다. 흔히 영감이라고도 한다. 그럴 때면 살바도르 달리를 부러워한다. 그는 자기 안에 존재하는 심연의 무의식을 자유자재로 꺼내어 화폭에 담는다. 욕망과 억눌린 감정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이미지의 향연이 펼쳐진다. 자기 해방이다.
나도 조금 더 나를 관대하게 대해서 해방되도록 노력한다. 무의식의 단편이 돌연 바람처럼 불어와 어느새 하늘 저편으로 홀연히 사라진다. 잡을 수 없는 신기루이다.
침묵………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지나간 글을 읽다가 사라진 아이디어가 다시 기억났다. 행운이다. 소설에서 문장의 역할과 힘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처음에는 몰랐다. 소설에서 문장이 가진 힘이 얼마나 되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답을 찾았다. 먼저 영화와 소설을 비교해 본다. 영화는 배우의 연기를 통해 현실을 모방한다. 흡입력이 강하다. 빠르게 관객의 시선을 붙잡고 빠져들게 만든다. 별도의 사유과정 없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물론 그림이나 음악처럼 직관적이지는 않다. 언어의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상매체에서 배우의 연기는 중요한 전달도구이다. 영화 속의 장면을 소설로 재현한다면 묘사를 통해 표현하게 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미묘하고 섬세하고 다양한 감정을 온전히 소설 속에 재현하려면 단순 정보전달 이상의 문자적 표현이 필요하다. 단어와 문장의 조합을 통해 표현능력을 극대화할수록 섬세하고 미묘한 상황의 전달이 가능해진다. 문체의 힘이다. 정리해 보자. 내가 표현하고 싶은 사물, 대상, 감정과 정서가 있다고 가정하자. 어떻게 해야 표현의 대상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단어의 선택과 조합, 문장 간의 리듬이 한데 어울려 그로테스크, 아이러니, 격정적 사랑, 차가운 이별, 한없는 그리움 등을 그려낼 수 있다. 이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가진 언어의 범위가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의 한계이다. 인식의 해상도는 언제나 언어의 해상도보다 높다. 본 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음에 안타까워한다. 물론 가장 오리지널 한 대상은 살아있는 현실 그 자체이다. 현실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는 나의 인식능력에 절망하지만 그보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내가 가진 표현수단인 언어의 한계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가슴에 새길만 하다.
인식의 깊이를 얻기 위해서는 침묵이 필요하다. 침묵은 사유를 불러온다. 침묵은 무의식에 닿기 위한 유일한 통로이다. 나의 유일한 무기인 언어의 확장이 절실하다. 언어의 확장 없이 세계의 확장은 불가능하다. 나는 매일 절망한다. 나는 매일 죽는다. 나는 매일 태어난다. 나에게 탄생은 언어의 확장이며 세계의 확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