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2025. 4월 11일 (금)
벚꽃이 절정에 다다른 봄의 한가운데에서 쏟아지는 봄을 견딜 수 없어 짬을 내 나들이를 다녀왔다. 리움미술관 나들이를 갔다. 유료관람은 다음으로 미루고 무료관람을 택했다. 삼성이 모아놓은 골동품과 금제 장신구들을 관람했다. 아쉽지만 2층의 고미술품관은 전시 준비 중이라 볼 수 없었다. 다음에 볼 수밖에. 4층과 3층에는 고려청자와 백자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달항아리였다. 아무 무늬도 없이 덩그렇게 크기만 한 항아리. 그 하얀색 볼륨감 넘치는 몸매를 감상하다 보니 묘한 매력이 흘러나온다. 마치 아무 맛도 없이 싱겁기만 한 평양냉면의 육수를 떠오르게 한다. 처음 가서 먹어보면 아무 맛도 없는 밋밋함에 의아함을 갖는다. “이게 뭐지? 뭐 이래!”
그걸 참고 계속 먹다 보면 어느새 알게 된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자극적이고 유혹적인 조미료맛에 길들여져 왔는지. 은은하고 담백하고 수수한 그 맛에 매료된다. 그 뒤 난 평양냉면의 열렬한 애호가가 되었다.
보면 볼수록 빠져든다
달 항아리를 5분 이상 응시했던 것 같다. 무한한 상상을 가능케 하는 백색의 질감들. 모든 것을 다 품어줄 듯한 넉넉함. 능력만 된다면 집에 하나 두고 일이 잘 안 풀릴 때, 또는 격한 감정에 휩싸일 때 한 번씩 쳐다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층의 거울로 장식된 계단과 조형물들, 그리고 오렌지 색 조명도 인상적이었다. 현대적 감각의 조화가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가방을 보관하는 검은색 사물함마저 건물 전체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활자와 모니터만을 쳐다보던 나의 일상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나온 김에 이태원 길도 걸었다. 대낮이라 조명이 없어 활력 넘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이태원 특유의 퓨전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었다. 거리 곳곳에서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을 만나게 된다. 단일 민족을 강조하던 예전의 정체성을 벗어나 다양성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실감한다. 마치 전후 아메리칸 드림을 외치며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들이 미국으로 달려가던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미국 역시 관용과 포용으로 이들을 받아들이면서 번성을 누렸다.
전후 미국이 강대한 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군사력이다. 그러나 물리적 힘만으로는 그 자리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 민주주의라는 정신적 가치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포용력이 물리적 강함을 보완해 주었다. 소프트 파워이다. 모든 번성한 제국은 이질적 문화와 사람들을 포용하고 관용으로 대했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그 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아시아나 라틴 계열을 차별하며 폐쇄의 길을 걷고 있다. 자유무역의 선도자였던 미국이 이제는 보호무역을 시행하며 전 세계 국가의 원성을 자아내고 있다. 서서히 정점을 지나 하락하고 있다는 징후를 여러 곳에서 보게 된다.
힘의 관계는 진공을 허락하지 않는다. 약해진 그 틈을 중국이 비집고 들어간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도 더 이상 미국에 우호적이지 않다. 대한민국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 내란을 극복하고 빠르게 정상궤도에 진입해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이다. 12.3 내란사태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지도자 한 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었다. 수준 낮은 지도자 곁에는 한물간 무능한 관료들만 몰려든다는 유시민의 통찰이 사실임이 그대로 입증되었다. 나라에 인재가 없는 게 아니라 제대로 등용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시스템이 작동해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4K의 고화질로 생중계되는 방송을 시청하듯 이 사태의 시작과 끝을 온 국민이 체험했다. 이 쓰디쓴 경험이 바탕이 되어 앞으로 다 잘 될 거라 믿는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저력을 믿는다.
이왕 나온 김에 봄을 더 느끼고 싶어 잠실 석촌호수로 갔다. 강과 호수, 높은 빌딩, 그리고 꽃이 어우러진 곳이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정말 많다. 한껏 예쁘게 꾸미고 와 연인들끼리 손을 잡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외국인도 많다. 모두들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다. 나도 몇 장 찍어 지인들에게 보냈다.
그냥 보내기 허전해 봄날 차오르는 감흥을 몇 자 적었다.
너는 봄을 견딜 수 있느냐
나는 견딜 수 없다
춤이라도 추고
노래라도 불러야겠다
산다는 건 그런 거다
숨 쉬고 있다고 다 살아 있는 건 아니다
울고 웃으며
외롭다고 말하고
아프다고 말하라
자연은 너를 품고 치유해 주리라.
계절의 변화는 축복이다.
계절의 변화 속에 내 안에 일렁이는 감정들
기쁨과 슬픔, 희망과 고통, 그리고 심지어는 분노와 질투까지도
창조를 꿈꾸는 자들에게는 축복이다.
고통마저도 창조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으니까
산다는 건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겨울은 인내의 시간
봄은 부활의 시간
여름은 활활 타오르는 정열의 시간
가을은 고요하게 침잠하는 사유의 시간
이도 아니라면 각자의 의미 있는 시간
몇 번의 4계절이 저마다에게 주어질지 모르지만
지금 이 계절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를 마감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안 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내일은 또 내일의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