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요새>
2025. 4. 14 월요일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음악을 좋아한다. 듣는 것도 좋아하고 기타 연주를 하며 부르기도 한다. 내가 가진 소망 중에 무대에 서서 나의 노래를 부르는 꿈도 있다. 아마 그 무대는 거리가 될 것이다. 매일 상상한다. 언제 어떤 식으로 나의 꿈을 실현해 갈지.
최근 유튜브를 통해 노래를 듣다가 문득 꽂힌 노래가 있다. <얼음요새>라는 노래가 귀에 들어왔다. 틈만 나면 이 노래를 듣는다. 원곡은 디어클라우드라는 밴드가 불렀다. 하지만 내가 듣는 버전은 몇 년 전 한 경연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부른 노래이다. 김 소연이라는 이 가수는 결국 최종 본선에서 2등을 했다. 쓸쓸함과 고독이 짙게 배인 음색이 아주 매력적인 가수이다. 나중에 팬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이 노래의 음원도 출시했다. 원곡을 비롯해 여러 버전을 다 들어봤다. 웬걸 나는 경연 시에 불렀던 이 버전이 가장 좋다. 본선 진출자 5명이 결정된 가운데 마지막 한 자리를 놓고 탈락한 7명의 참가자가 패자 부활전을 했다. 6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이 노래를 부른 참가자가 본선에 진출했다. 라이브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노래이다.
왜 여러 버전 중에 최종 본선진출자를 가리는 경연에서 불렀던 이 버전이 가장 매력적일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해답을 얻었다. 이 노래에서는 다시 재현할 수 없는 시간의 아우라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시간의 아우라가 예술작품의 본질적 요소인 유니크함을 만들어 낸다
아우라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발터 벤야민이 그의 대표적 저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언급한 말이다. 그는 예술작품의 일회성과 현존성에서 비롯되는 고유한 분위기, 역사적 깊이, 그리고 진품으로서의 권위를 아우라라고 정의했다. 벤야민은 다음과 같은 일화로 아우라를 설명했다.
젊은 날 전쟁에 패한 왕이 도망치다가 산속에서 우연히 만난 노파가 해준 오믈렛 맛을 평생 잊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 그 오믈렛이 너무 먹고 싶었다. 나라 최고의 요리사를 불러 그 오믈렛을 재현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거라고. 최고의 요리사는 차라리 자기를 죽여 달라고 했다. 왕께서 쫓기던 절박함과 굶주림 속에서 우연히 먹게 된 오믈렛은 어느 누구도 재현할 수 없다고. 자기는 만들 수 없다고 했다. 발터 벤야민의 책에 나오는 일화이다.
예술작품에만 아우라가 있는 게 아니라 시간에도 아우라가 있다. 시간은 언제나 지금만이 존재한다. 예상치 못한 패자부활전, 탈락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과 압박감, 마지막 기회라는 간절함, 젊은 날의 도전, 꿈과 소망.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두 번 다시 재현될 수 없는 그 독특함을 만들어냈다. 노래 중간중간 들리는 심사위원들의 감탄과 절정에서 터져 나오는 샤우팅, 그리고 이어지는 허밍은 나를 그 경연의 현장으로 데려간다. 같은 가수가 다시 불러도 이처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녹음된 음원은 수없이 반복해서 부른 것들 중에 가장 잘 부른 버전을 선택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토튠을 이용해 멜로디의 거친 부분을 다듬기도 한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하지만 거기에는 시간의 아우라가 없다. 라이브와 음원을 놓고 비교한다면 라이브가 압도적이다. 심지어는 실수마저도 노래의 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니 이건 나의 주관적인 견해이다. 그 역동성과 살아있음을 찬미한다.
새벽 정적 속에 조용히 일어나 생각한다.
다시 재현될 수 없는 일회성. 모든 시간이 일회적이다. 그리고 시간을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삶도 일회적이다. 나의 인생을 예술작품에 비유한다면 나의 예술작품 속에서는 어떤 아우라가 흘러나올까? 아니 매 시간이 고유의 아우라를 갖는다면 오늘 나의 하루는 어떤 아우라를 지닐까?
열심히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