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에서 여름나기

by 임경환

2025년 여름은 진짜 덥다.

덥다고 말하면 더 덥다. 입 다물고 방법을 찾아보자.

덥긴 하지만 다행히 비는 많이 왔다.

물 부족 국가인 우리나라에 가뭄까지 오면 정말 고통스럽다.

국토의 70%가 산인 것도 다행이다.

그 산들이 자주 오는 빗물을 품고 계곡에 흘려보낸다.

아무리 덥다지만 우리나라 계곡에서 덥다고 느낀 적은 없다.

던지면 쉽게 펴지고, 접기도 쉬운 텐트 하나 들고 계곡을 찾아 나섰다.

가평 용추계곡, 남양주 수동계곡, 강화도 함허동천


결론을 말하자면 대성공이다.

계곡 가에 텐트를 치고, 거기를 본부 삼아 계곡에서 놀다가

그 지방 맛집에 가고, 눈에 띄는 카페에도 가고

오래 머물다 보면 그 지역 오일장도 만나게 된다.

밤엔 평소 보지 못했던 별도 보고 달도 보고

물속에 발 담그고 옥수수도 먹고 복숭아도 먹고 평소 못 보던 책도 읽고

나이가 든다는 게 서럽다지만 이렇게 좋기도 하네!

논다고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 거 참,

젊을 땐 바빠서 여름휴가 때 간신히 며칠 해보던 걸

내 맘대로 아무 때나 밥 먹듯이 할 수 있으니

내년에도 이런 정도의 더위면 견딜만하겠다.

이렇게 저렇게 이 계곡 저 계곡에 가다 보면 결국은 내가 이기게 되어있다.


9월이 코앞이다.

아무리 덥다 한들 해가 이미 기울어 멀어지는데

더위가 길어봐야 한낮에 잠깐 그럴 뿐이다.

덥지만 강화도 함허동천 데크에 누워 하늘을 보니 색이 가을 색이다.

바람에도 열매가 성숙해 가는 냄새가 나고 피부에 닿을 때도 상냥하다.

들판의 바람은 몰라도 산골짝 계곡의 바람은 이미 패배를 인정하고 있다.

더우면 며칠 더 계곡에 들어가 있으면 된다.

그 속에 들어가 가만히 내버려두면 더위는 저절로 사라진다.

그래 나이가 드니 똑똑해지네.

더우면 계곡에 들어가 있고

추우면 따뜻한 카페에 들어가 따끈한 커피 한잔하고 있으면 마냥 편안할 텐데….

야! 이거 점점 내가 부처님급 도사가 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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