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본 고향 후배

by 임경환

조카 결혼식이 있어서 대구에 갔다.

둘째 여동생이 자기 일 년 선배인 옥이 언니가 왔는데 자기도 잘 모르겠더란다.

그 옥이가?

친구의 여동생이자 동내 종갓집이자 부잣집 막내딸

워낙 내외하는 동네인 데다 서너 살 이상 차이가 나고

더구나 난 위로 쳐서 놀아서

어쩌다 스치듯이 봤을 뿐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다.

예쁘고 얌전하고 수줍어하는 아이였다.

한참 자라던 초등학교 모습을 봤을 뿐 기억에 없는 다 자란 모습을

혹시 봤다 해도 몇 해에 한 번 스쳤을 것이다.


거의 45~50년만인데 이번에 놓치면 앞으로 못 보는 게 확실하다.

식사하는 여자 하객을 하나씩 훑었다.

저기 내 여동생이랑 마주 앉아 있는 그 여인이다.

어린 여자아이가 옛 순수함을 간직한 체 편안하고 아름답게 나이 들어 있었다.

친구의 동생이라서 한참 어리게 본 거지 내보다 다섯 살 아래란다.

종갓집 막내로 사랑만 받으며 자랐을 그녀의 표정을 보니 힘들게 살진 않았다.

다행이다.

오빠네 동생들은 힘들다고 교직에서 다 명예퇴직을 했지만

자기는 가르치는 게 좋아서 선생 일을 계속하고 싶은데

곧 퇴직해야 해서 가르치는 걸 할 수 없으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단다.


한번 제대로 얘기를 나눈 적도 없었을 거 같은데 나랑 추억이 있단다.

“소먹이로 오빠를 따라갔다가 소나기가 쏟아졌어.”

“그때 오빠가 나무를 부러뜨리고 구부리고

그 위에 잎이 큰 나뭇잎을 덮어서 비를 피하게 했어.”

“그랬다고? 너 집에서도 너한테 소를 먹이게 했다고?”

“그뿐만 아니야.”

“소 이까리를 놓으면 안 되는 줄 알고 꼭 쥐고 있었는데

어느 오빠가 소는 풀을 다 뜯어 먹으면 자연히 사람을 찾아오니 그냥 내버려두라 했어.

그랬는데 소를 잃어버렸어.”

맞아 그랬다.

그런 말을 할 사람이면 나밖에 없다.

나는 매일 소를 몰고 산으로 들로 갔으며 그 세계에서 나는 프로였다.

하필 옥이가 소를 먹이로 온 날

우리 소랑 그 집 소가 작당을 하고 모단골 골짜기로 도망갔다.

산에서 늘 먹는 거친 풀이 먹기 싫어 이놈들이 눈을 마주치고 도망을 가서

어느 농부가 심어놓은 부드러운 콩잎이며 연한 새싹을 뜯어 먹었지.

소를 잃고 집에 터덜터덜 왔는데 이웃 동네에서 연락이 와서

아버지가 가서 사과하고 소를 되돌려 받았다.

그 시절 인심에 보상을 하진 않았을 거다.

그래 그때 그 옥이구나.

그 집 소랑 같이 그랬구나!

그녀가 그 후로 소먹이는 게 너무 무섭고 싫어서

대구로 전학을 보내달라고 그렇게 부모님께 졸랐단다.

정말 같이 간 가족이 없었더라면 그녀랑 오후 한나절을 보냈을 텐데….

짧은 시간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헤어졌다.


어린 날 대문이 세 개나 있는 그 집에 놀러 가곤 했다.

신씨 가문의 종손인 옥이 부친은 늘 안채랑 멀리 있는 바깥채에 있었다.

갈 때마다 어르신께 늘 인사를 드렸고

그러면 우리 집에서 볼 수 없었던 땅콩이며 사과 때론 호두를 내놓게 하셨다.

늘 한 말씀을 하시고 옥이 오빠랑 나랑 최소 그 어른께 30분은 붙들려 있었으며

또 나랑 대화하는 것도 좋아하셨다.

책장에 책이 가득했으며 그 시절 귀한 책이지만 내겐 빌려줬다.

아무 책이나 뽑았지만 어려워서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그냥 글자만 읽었다.

옥일 만나서 그 추억이 떠올랐다.


정말 50년 세월이다.

거의 그렇다.

중간에 봤다 치더라도 그냥 길에서 스친 셈이니 그렇다고 봐야 한다.

동네에서 제일 이쁘던 그녀가 고생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기 좋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좋은 게 아니라 고마웠다.

내가 환상으로 기억하는 그녀가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자라고 잘 익어가고 있어서….

거기다 황순원의 소나기보다 더 소나기 같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가 들려줘서

고마웠다.

그런 세월이 있었구나!

만나지 못했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이야기였어.

예쁘던 여자아이가 시간이 다 지나서 온화하게 웃으며 나타나 줘서 고맙다.

어느 소녀가 세월이 지나 거울 앞에 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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