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고향에 내려가 쉬었다.
명절에 북적이던 고향은 지금은 한가롭다.
동네 가장 높다란 곳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한길을 봐도 들어오는 차가 없다.
밤에 들판에 나가 마을을 보면 불이 켜진 곳이 두서너 집뿐이다.
그나마 몇 분 계신 어르신들이
명절엔 도시에 있는 자녀 집에 가서 더더욱 사람이 없다.
복이네 집도, 순이네 집도 넝쿨로, 잡풀로 우거져있다.
우리 뒷집, 예전에 그 집 아이랑 뛰어놀던 마당은
숲과 넝쿨로 우거져 한발도 들일 수 없다.
그 마당에 거대한 도토리나무들이 우람한 덩치를 하고
마치 200년은 살아낸 거목 같다.
가만있자! 저놈들이 내가 저기서 놀 땐 저기 없었다.
뭐가 귀하다고 다 자란 도토리나무를 옮겨심었을 리도 없다.
속을 뻔했다. 내가 여기 살지 않았더라면 영락없이 속았다.
나보다 한참 어린놈이다.
내가 고향을 떠나고 저 집에 살던 사람들이 이사 가고
어디서 굴러온 도토리가 자라서 저렇게 된 거야.
내 어릴 때 거대한 고목이던 골샘 옆의 감나무는
도토리나무 그늘에 가려 쪼그라지고 쇠약해졌다.
감히 오르지 못하고 흠모하며
홍시 하나 떨어뜨려 주길 바랐던 고목 감나무는
젊은 나무들에 치여 늙었다.
나무들도 성장하고 치이고 늙는구나!
인간의 일생은 짧은 거 같아도 정말 길구나.
저 나무들이 저렇게 거목이 되는 시간보다 난 더 오래 살았구나.
저 도토리나무들은 내가 사라지면 증인이 없으니까
마치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것처럼 행세하겠구나.
마을 입구에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는
비바람에 가지를 잃고 오히려 작아지고
늦게 나타난 꿀밤나무가 마치 동네 최고 어른 같다.
내가 한참 놀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것들이 감히
나를 속이려고 했어!
난 저 거대한 도토리나무들보다 한참 형아다.
내가 마을에 나타나는 이상, 내 눈앞에선 어쩌지 못하지만
저 꿀밤나무 저놈들 만만치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