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복 충신각

청주 문의 문화유산단지 산책 중에

by 임경환

청주에 들렀다.

누가 양성산에 오르면 대청호가 내려다보인다길래

산으로 간다는 게

양성산 자락 대청호수 옆에 있는 ‘문의 문화유산단지’로 가게 된다.

차라리 잘 됐다.

호숫가에 예전 우리 조상의 삶을 느낄 수 있도록

전통가옥과 옛 농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어 한가하게 둘러봤다.

온갖 관찰사니, 현령이니 등등의 공덕비가 즐비한 가운데

저기 뚝 떨어진 곳에 ‘김선복 충신각’이라는 게 있다.

이건 또 뭔가 하고 들여다본다.


“임진왜란 때 조헌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충신인

의성(義城) 김씨 김선복(1571~1592)의 충절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

이런 글귀가 있다.

공(公)께서 어떻고 하길래 어른인 줄 알았다.

갓 스무 살의 청년이었어. 지금 시대로 치면 어린아이다.

그 어린아이가 의병에 들어가 전투에 앞장서다가 죽었다.

500년 전이라 해도 갓 스무 살은 어리다.

급여를 받는 정식 군인도 아니면서 나라를 위해 스스로 나섰다가

갓 21살에 전사했다는 건 그 시절에도 흔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충신각을 세웠겠지.

그 시절 그 또래의 청년들이 다들 그랬더라면 충신각이 수도 없이 많거나

너무 당연한 일이니 세우지도 않았겠지.

목숨보다 더 귀한 게 어디 있을까?


까마득한 선조이지만 그 시절 그 어린아이가 창을 움켜쥐고

전쟁에 나선 모습이 그려진다.

백성으로 조용히 살지만 위기가 닥치면 나서는 남자

지켜야 할 자식도 없지만 나라와 부모, 형제, 이웃을 위해

앳된 청년이 용감하게 싸우다가 사라졌다.

문의 문화유산단지 안에 온갖 공덕비도 있고

누군가는 효도를 다 하느라 부모님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삼 년을 기거했다는 증거의 기록도 있지만

유난히 더벅머리, 아니 조선시대이니 더벅머리도 아니고

장가를 들지 않았으니, 상투도 아니구나.

댕기 머리를 한 총각으로 창을 움켜쥐고 달리는

김선복만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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