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보는 눈? 그런 건 내게 없다.
극히 주관적인 안목만 있으며 감정이 있으니 느낄 줄은 안다.
내 마음에 들고 그걸 갖고 싶으면 그게 좋은 그림이지 않을까?
개인에게 그림의 가치는 어떤 화가가 그렸나 보다
내가 어떻게 느끼고 나와 관계된 어떤 순간을 떠 올리고
거기다 나와 역사를 오래 하다 보면
점점 정이 들어서 그 가치가 올라가는 게 아닐까?
우리 집 거실 벽에 그림이 하나 걸려있다.
어느 봄날,
여인이 성장을 하고 양산을 손에 들고 초원을 가로질러 가는 그림이다.
내가 가장 아끼는 그림이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의 허름한 가족용 기숙사 사이를
몇 개의 그림 액자를 겨드랑이에 끼고 누비던 학생이 있었다.
후덥지근한 여름날 땀을 흘리면서
가난한 학생들이 사는 집 문을 두드리는 바보였다.
그림을 배우는 이 학교 학생이라고 내게 그림 하나만 사 달라고 했다.
그림도 마음에 들고 그 학생도 애처로워 보였다.
가난했지만 그때쯤은 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1달러도 아깝고 여유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학교에서 등록금을 면제받았고 지도교수가 월급을 조금 주었으며
아내가 베이비시터를 하며 가욋돈을 벌고 있었으며
딸이 태어나 막 아장거릴 때였다.
유학생으로 내 가족이 완성되고 안정과 행복이 깃든 시기였다.
그림도 마음에 들고 그 친구도 애처로웠다.
아마도 10달러 정도는 지불했다.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게 내가 돈을 주고 산 첫 번째 그림이다.
미국에서 여러 번 이사하는 동안,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러 곳을 전전하는 동안
그 그림을 늘 갖고 다녔다.
지금도 우리 집에 걸려있다.
거실에서 우리의 삶을 가만히 내려다본 그림이
우리 가족이랑 역사를 같이하면서
이젠 그 가치가 돈으로 계산이 안 된다.
그 학생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을 못 하니
그가 이미 유명해졌어도 난 모른다.
거기다 그쪽으론 여간 유명해져도 난 모른다.
하지만 고맙다.
그림을 올려다보며 여유를 찾고, 가족을 떠올리고
예전 추억도 떠올리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작은 그림 하나에 몇십 년 동안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얻었으니
그걸 판 그 친구가 고마울 수밖에 없다.
그렇구나. 그림도 그림이지만 거기에 역사가 더해져야 값어치가 있구나!
스토리가 있는 그림, 역사가 있는 그림,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
힘을 나게 하거나 미소 짓게 하는 그림, 그게 최고군!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그려준 비뚤그림이 어떤 거장이 그린 것보다
더 감동을 주는 것처럼
그래서 저 정도를 느낄 줄 아는 나는 그림을 보는 안목이 없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