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세 아버지는 치매를 앓으며 요양원에 계신다.
두 해전 아내를 잃으며 병증이 점차 심해지더니,
이젠 자식은 알아보지만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손자들이 어떤 자식의 아이인지 헷갈려 하신다.
고생해서 키운 오남매가 당신을 요양원에 모셨다고 생각할 때
과묵하신 아버지도 괘씸함과 허망함으로 가끔씩 분노를 터뜨렸다.
자랑하고 싶어 못 배기게 했던 그놈들이
친구 하나 없는 그곳에 두고 일주일에 한 번 얼굴을 내민다니….
처음엔 분노했으나 그래도 찾아오는 자식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시는지
혹 그런 감정마저 포기하셨는지 지금은 담담해지셨다.
무슨 생각을 하시느냐니까 아무 생각도 안 하신단다.
하면 뭐하냐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계신단다.
아내와 자식과 살아온 세월을 떠올리고 기뻤다가 슬펐다가,
좋았다가 실망하고, 그걸 반복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생각하는 자체가 고통이겠지….
맑은 정신으로 옛날을 떠 올리며 슬퍼하기보다는
몽롱한 상태에서 무얼 원하지도 아무도 원망하지도 않으면서
계시는 게 더 좋겠다 싶다.
나의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늘 유머를 간직하신다.
자식 이름을 잊고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다 해도
아버진 그래도 농담을 하실 분이다.
자식의 미안한 마음을 유머로 무너뜨리며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여유로움을 품고 사람다우시다.
아마도 치매의 맨 끝에서 모든 걸 잊는다 해도
헛소릴 하신다 해도
유머러스하게 말씀하실 분이 분명하다.
아버진들 이런 세상이 올 줄도, 본인이 이렇게 될 줄 알았겠는가?
자손들 먼저 몸소 겪으면서
늙어가는 과정이 이런 거라는 걸 고스란히 보여주고 계신다.
그런 슬픈 과정에서도 자식을 유머로 위로하고
좋은 마음으로 잊힘에 들어가시는 분
늙는다는 건, 다가오는 죽음이란 건 이런 거란다.
또 늙었을 때 이런저런 것들이 오니 미리 생각을 해두고 준비를 하라고
자식들 앞서서 겪으며 가르침을 주신다.
아버지를 보면서 마음이 아련하다.
내가 늙어서 아버지처럼 되었을 때
내가 어찌 지금 아버지께 원하는걸, 자식에게 바랄 수 있을까?
자식이 내게 몽롱한 정신이길 바랄 때 그때 내 마음은 어떨까?
아버지가 몸소 보여주고 계시지만
난 아직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
단 하나 분명한 건 어떤 상황에서도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머 능력은 생의 끝까지 간직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