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07
메일함을 정리하다 보게된 조각글. 22년도 2월에 써놓은 글이다. 행복해지고 싶어 매 순간 발버둥 치던 시절이었다. 바닷가 근처 좌판에서 파는 싸구려 폭죽을 사들고 행복의 라이터를 켠다. 불꽃은 순식간의 사방으로 별처럼 흐트러지다 희미하게 흘러내린다. 마치 하늘에 남긴 오점처럼 새카만 공간엔 아무 흔적은 남지 않았다. 결국 남은 건 손에 들린 분리수거조차 안 되는 쓰레기뿐. 끝까지 마지막 힘을 다했지만 결국 그것들이 자신이 가진 전부였기에 열 발을 마저 발사하고 죽어버린 껍데기.
가짜 불꽃놀이를 보며 진짜 불꽃놀이를 본 것처럼 행복을 느끼라는 그런 교육 지침에 따라 매 순간을 합리화하면서 지냈다. 그러니까 ‘현재를 즐겨라’라는 말과는 다른 맥락인 게, 가짜를 보며 진짜를 느끼라는 건 거짓을 참으로 느끼라는 것과 다를 바가 뭐가 있었나 싶다. 결국 어른들의 방식대로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으로 느낄 수 있게 합리화를 끝도 없이 시도했으며, 계략은 성공했는지 지금의 나는 사랑을 받아도 그것이 진짜로 사랑임을 느끼지 못하는 감정 불구의 어른이 되어버렸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간단히 말해서 내가 웃고 싶은 건지 울고 싶은 건지 나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모순적이게도 대신 타인의 감정을 알아채는 것에는 귀신같이 알아채곤 했다. 그것이 자신의 삶엔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임을 알면서도 그 촉은 계속해서 바깥을 향해 갔다.
나는 이따금씩 울고 싶은 순간이 점점 희미해지곤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러니까 오늘 새벽에 울면 괜찮아지겠지, 아니다 자기 전에 울면 괜찮아지겠지 아니 아니 내일모레 울면 괜찮아질까 싶어서 휴대전화 속 달력을 눌러 우는 날이라고 계획해 두고 싶은 마음을 다잡았었다. 이렇게 하루를 버텨갔다. 이렇게 행복이란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삶을 사는 나도 매 순간 행복을 꿈꾼다. 우는 날을 기록하는 걸 뒤로한 채 웃는 날이 많아지게 웃는 날이라는 일정을 써두고 계획한다. 그럼 곧 진짜 불꽃놀이를 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