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4일. 화요일이었고 블루베리가 22주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시할아버지 기일이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진료를 보고 오면, 시댁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병원에 가기 위해 옷을 입고 집을 나서려는데, 딸아이가 다리에 매달리며 가지 말라고 엉엉 울었다.
"엄마 의사 선생님 만나고 금방 올 거야. 올 때 아이스크림 사 올게."
울먹거리며 눈물을 닦는 볼이 통통한 딸과 손가락 걸어 약속을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전날 잠을 설친 탓에 몸이 무거웠다.
여름휴가 후 첫 진료일이기 때문인지, 정밀초음파실 앞에는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예약된 시간보다 훨씬 뒤로 늦어져 벌써 오전 11시를 지나고 있었다. 정밀초음파라 그런지 대기 순서가 워낙 천천히 빠지고 있었다. 저녁에 시할아버지 제사를 앞둔 며느리로서 진료가 너무 늦어지는 것이 초조해지기 시작할 무렵, 유달리 보는 시간이 길었던 한 여자가 창백한 안색으로 초음파실에서 나왔다. 뒤 이어 곧 다음 차례가 엇갈려 들어가고, 창백한 안색의 여자는 벽에 기대어 우두커니 서 있다가 어딘가로-아마도 남편이었으리라- 전화를 걸었다.
"아기가... 심장이..."
감정이 복받치는지 여자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가 겨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대학 병원에 가야 한다. 진료의뢰서를 받았다.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통화 중인 여자가 점차 멀어지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일이 아닌데도, 마음 한편이 묵직해지면서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이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상냥한 여자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초음파를 보는 침대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초음파 기계를 배에 대자 그 사이 많이 자란 블루베리의 몸이 보였다. 시커멓고 희끄무레한 덩어리들 속에서 의사는 잘도 눈이며 코며 입을 찾아내어 나에게 알려 주었다. 동그란 머리를 보고, 심장- 팔딱팔딱 문제없이 잘 뛰는 건강한 심장-도 보고, 손가락 수와 발가락 수도 세어 주었다. 아기는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긴장하여 꼭 쥐었던 차가운 손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주수보다 약간 크게 잘 자라고 있네요. 경부길이는 좀 짧은 것 같은데, 담당선생님 진료 한 번 보고 가세요."
정밀초음파를 봐준 젊은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기분 좋게 인사하고 나와서 담당의사의 진료실로 자리를 옮겼다.
담당의사는 평소처럼 사람 좋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아기 얼굴 잘 봤냐며, 엄마아빠 중에 누굴 닮았냐고 농담을 던지던 의사의 말이 초음파 기계를 넣으려던 순간 뚝 끊어졌다. 의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심각한 얼굴로 일어나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응급환자 한 명 받아달라는 말을 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가 몇 번 오가는 동안 나는 갑자기 현실감이 없어진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 저 응급환자가 나인 걸까. 아기는 아무 문제없었는데 무슨 일일까.
길게 생각에 빠질 여유도 없이, 전화를 끊은 의사가 나에게 말했다. 지금 양막이 나와있다. 남편 불러서 지금 바로 대구대학병원으로 가세요. 걷지 말고, 누워서 이동해야 됩니다.
진료실에서 걸어 나와- 걷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휠체어를 갖다 주지 않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나 좀 데리러 올래요? 대학병원에 가야 한데요. 네, 지금 바로요.
내 목소리에 현실감이 없었다. 내 입으로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로비 의자에 누워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자리가 없어서 서 있는 다른 임산부들이 있었을 텐데,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