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잠에 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하다가 새벽 4시가 되자 더 이상 잠이 들 수가 없었다. 배가 뭉쳤다가 풀어지기를 반복하며 아파왔다. 응급실에 가야 할까? 생각하다가 이내 단념했다. 딸이 고열로 몇 번 응급실을 방문했던 기억으로는 목숨이 경각에 있지 않는 이상 일반진료보다 더 기다려야만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응급실이 아니던가. 그렇게 해가 뜰 때까지 통증 견디다가, 남편에게 딸아이의 등원을 부탁하고 병원 갈 준비를 했다. 옷을 갈아입는데 속옷에 설핏 피가 묻어났다.
"어제 진료 보셨는데 다시 오셨네요? 무슨 일이실까요?"
하루 만에 다시 방문한 나를 보고, 접수 간호사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간밤에 배가 너무 아프고, 피도 좀 비쳐서요. 2과 선생님 계실까요?"
담당의사인 2과 선생님은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의사였다. 친정아빠처럼 푸근한 인상과 서글서글하고 유쾌한 말투로 걱정 많은 산모들을 잘 달래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특유의 유머로 불안에 떨고 있는 나를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출혈은 지금 전혀 없어. 우리 블루베리도 잘 놀고 아무 문제없는데? 블루베리야~ 괜찮지~? 원래 이 주수에는 배가 자주 뭉치고 그래요. 정 걱정되면 정형외과 가서 엑스레이 찍고, 한약 한 재 딱~ 먹든가."
임산부가 엑스레이를 찍고 한약을 먹을 리가 있는가. 말투야 익살스러웠지만, 나를 교통사고 합의금을 받아내기 위해 없는 병도 만들어오는 진상으로 보는 것 같아서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따지고 들고 싶었지만, 내 아기를 받아주어야 하는 의사이기에 더는 대꾸하지 않고 알았다고 했다. 진료를 보는 즈음엔 통증도 거의 없어진 상태였고, 의사가 괜찮다니 괜찮겠지 싶기도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먹고 원래 스케줄대로 3주 뒤 정밀초음파 때 와요." 그 말을 뒤로하고 나는 병원을 나섰다.
그 뒤로, 배가 종종 뭉치기는 했지만, 그날 밤만큼의 통증도 출혈도 없었기에 나는 의사의 말대로 3주 동안 일상생활을 했다. 배가 점점 무겁고 처지는 느낌과 밑이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첫째를 이미 겪어본 나로서는 둘째라 그런가 보다 하며 3주를 보내버렸던 것이다. 미련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