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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ul 13. 2021

연극

막이 내리길 기다리며


연극이 끝나고 휘황찬란한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배우들을 비추고, 무대 위에서 흥이 저절로 오르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노래하는 배우들. 관객에게 기립박수를 받고, 여러 번의 인사를 거치고 나서야 막이 내린다. 흔히 말하는 커튼콜. 지금부터는 그 커튼콜이 끝난 후를 이야기한다.     

 

조명을 받아 아름답던 분장을 연극이 끝난 후 가까이에서 보았을 땐 두껍게 칠한 색조 화장이 송글 송글도 아닌 우수수 떨어지는 땀에 녹아 본래의 형태를 잃어버리기 직전이었다. 짙은 파운데이션은 다 떠서 피부 결과 반대로 일어났으며, 입술과 눈에 칠한 붉은 칠은 제각기로 가지를 뻗은 나무처럼 자유로웠다. 본디 한국인의 자연 머리 색이라고 할 수 없을 만한 눈부신 금발의 가발을 쑥 뽑아내면 망으로 고정한 흑발의 제 머리가 나타났다.      


다른 배우들과의 인사를 나누고 제 대기실로 돌아왔다. 이미 시끌벅적하고 꿉꿉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도 같았다. 아마 이 냄새는 옆 건물의 고깃집에서 나는 된장찌개 냄새일 것이다. 자그마한 극장에서 그마저도 주연이 아닌 이는 누군가의 도움과 손길 없이 스스로 준비를 하고, 끝내야만 한다. 관객 백 명을 수용하기도 벅찬 이 자그만 소극장에서 뮤지컬 주연의 호사를 바라는 건 헛된 희망일 뿐이다. 빛바랜 젊음도 다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지 오래로, 똘망똘망한 눈망울은 어디 가고, 흐리멍덩한 심연이 들어앉았다. 극장의 터줏대감이란 말을 얻은 것도 올해로 벌써 24년째이다. 한창 예술산업의 부흥기가 찾아오나 싶었는데 그가 과녁이 아니듯, 정확하게 날아가는 화살을 바라만 볼뿐이었다. 본인에게 찾아오는 기회를 잡기 위해 밤낮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살아왔건만. 다른 이들에겐 허허 웃는 속 빈 강정 취급만 받을 뿐이었다.     

그렇게 회의감도 잠시 묵묵히 겹겹이 쌓인 분장을 티슈로 지워내며 하루를 마친다. 제 다음 날은 7시간 후면 다시 시작될 터. 또 같은 역할을, 같은 연기를, 반복된 대사와 웃음을 지으며 연극의 막이 내리기를, 본인의 막이 내리기를 덤덤히 기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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