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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ul 13. 2021

목소리를 드릴게요

리틀 베이비블루 필



연구진을 대표했던 닥터 블라우(Dr. Blau)는 네 페이지에 걸친 절절한 유감 성명을 발표했는데 간단히 줄이자면 "그러라고 만든 약이 아니었다"라는 한 문장이 남는다.


 약의 공식 이름은 HBL1238이었다.

세상 일 중에 의도대로 척 척 해결되는 일이 과연 있을까? 우리는 한껏 기대하면서 일은 구상하고, 완벽한 성취를 위해 촘촘히 준비하며 계획한다.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일을 세상에 한껏 선보이는 날에 우리는 처음 기대한 최상의 시나리오를 그린다. 그러나 변수는 항상 찾아오기 마련이다.

 

나는 지난 한 강의의 마무리에서 최종발표를 맡았는데, 이 발표 하나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니 매우 떨려 발표 대본을 붙잡고, 예상질문의 답변과 그로 인해 생길 질문의 답변까지 모두 리스트를 만들어놓았다.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는 섣부른 착각 속에 빠진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헛된 자신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가 예상 가득한 그대로다. 내가 준비한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나만 알고 있었고, 청자는 끊어진 필름 조각을 이어 붙여 전체를 보기 위해 애썼으나, 내 발표는 퍼즐이 아니었던 터라 모든 피스가 제공되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학부생이 본 시선과 석사, 박사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퇴직을 앞둔 교수의 시선에는 너무나도 큰 폭이 있었다. 학부생은 그 점을 간과했다. 예상질문지에 있던 질문은 단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생각치도 못했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해 말은 더듬고, 답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발표는 끝을 맺었다.


자, 내 얘기를 간단히 줄이자면 "그러려고 준비한 발표가 아니었다"라는 한 문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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