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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ul 13. 2021

어항

왜곡된 작고 아름다운 나의 세계


 어렸을 적 조부모님 댁에 놀러 가곤 하면, 거실 한 벽면에 차지한 큼지막한 어항 앞에서 한참을 있곤 했다. 유려한 곡선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저 미끈한 유리 벽면을 가지고, 나전칠기 받침대 위에 놓인 대략 일 미터의 길이를 가진 어항이었다. 굴곡이 심한 편이 아니라 내부가 심하게 왜곡되어 보이지도 않았고, 바닥에 깔아놓은 작은 돌멩이와 자갈들, 그리고 내가 아끼는 형형색색의 구슬들과 가짜 산호초들로 바다도 강도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을 연출해놓았다.      

 

 어항 속에는 보통 금붕어 세-네 마리가 같이 살았는데, 매번 갈 때마다 잘 움직이고 있는 금붕어들에 반갑기도 했었다. 이 때는 금붕어의 수명 따윈 몰랐으며, 나의 조부가 뜰채로 죽어서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금붕어를 건져 버리는 것을 보기 전까지다. 어린 나이에 나름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금붕어들이 왜 죽었을까 생각하면서도, 배가 고파서 죽은 건 아닌가 생각하며 나는 금붕어 밥을 주는 조부모 몰래 한 움큼을 쥐어 더 넣어주기도 했었다. 뻐끔뻐끔 잘만 먹는 모습들을 보며 오래 살라고 빌었던 내 소원과는 달리, 과식으로 다 같이 뚱뚱해진 금붕어들이 죽어서 물에 가라앉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내가 모르기 전과 알게 된 후에도 어항 속에는 평균적으로 금붕어 세-네 마리가 함께 살았다. 많을 때에는 다섯 마리까지 있곤 했지만, 금방 죽어버려서 대부분은 평균을 유지했다. 근처에서 구피, 금붕어, 거북이 등 해양생물을 판매하는 수족관을 운영하시는 주인 분이 조부의 친한 친구라 들었다. 조부는 죽은 금붕어의 수만큼 또 새로운 금붕어를 어항 속에 풀어주었다. 아니, 감금했다고 말하는 게 맞을까? 대형 어항에서 작은 비닐로, 그리고 마침내 우리 집에 있는 일 미터의 어항 속으로 돌아온 금붕어는 수없이 죽어 나갔다.      


 금붕어가 죽은 이유는 비교적 간단했다. 어항 안 속이 매우 더러웠기 때문이다. 나름 작지 않은 내부엔 여과기도 있었고, 허리가 안 좋은 조부모는 그래도 이 주에 한 번씩 다가오는 일요일에 어항 속에 있는 물을 다 빼내어 네 벽면을 닦고, 자갈과 구슬들을 깨끗한 물에 담가 두었으며, 나의 새 장난감도 몇 개 골라 넣어 꾸미고선 청소를 했다. 가끔 일찍 일어난 주말에는 아빠를 졸라 자동차를 타고 간 조부모님의 집에 가서, 나도 팔의 소매를 걷어붙이곤 청소를 도왔다. 당시의 내가 한 일이라곤 예쁜 자갈과 돌멩이를 골라내고, 반짝이는 구슬과 장난감을 넣는 일뿐이었다.     


 당시엔 금붕어가 죽어나가서 슬픈 마음이 있긴 했지만, 그 사실이 내게 큰 영향을 미친 건 아니었다. 어차피 금붕어는 다시 생기고, 말도 못 하고 그저 조부모집의 거실의 벽면에 붙어 장식 역할을 하는 금붕어에게 사람만큼의 큰 애정 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생물이라는 호기심만 가득했을 뿐. 어쩌다 한 번 보는 금붕어에게 감정이입 따윈 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이야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 어항 속에 갇힌 해수어와 담수어를 마냥 달갑게 바라보지는 못한다. 나이를 먹고 자란 만큼이나 시대가 변했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었으며, 괜찮은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 불편했음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변화하는 세상을 보면 긍정적인 영향에 뿌듯하다가도, 잘 가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전보다 끔찍한 결과를 낳아 우울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도 ‘개개인이 각자 자신만의 어항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어항은 크기도, 모양도, 굴곡도 달라서 자신만의 왜곡된 시점으로 상대를 생각하고 바라보는 일. 본인 어항의 왜곡과 상대 어항의 왜곡으로 인해 굴곡은 더 심해지고, 상대의 본모습을 볼 수조차 없는, 심지어는 본인의 모습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아니, 이미 그러고 있다. 알 수 없는 어항 속에 갇힌 채도 모르게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마냥 죽는 날만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우리가 더 나아가려면 어항을 자주 청소하고 꾸미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깔끔한 모습을 보면 좋기야 하겠지만, 어차피 어항 안에 있는 이상 당신이 꾸미고 닦아봐야 왜곡된 굴곡으로 실체를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인가. 스스로의 어항을 벗어던지는 것이다. 벗는 게 어렵다면 작은 구멍을 내기 시작하는 것도 좋다. 눈구멍 하나만큼의 작은 구멍으로 안에 있던 물이 빠져나가게 되면서 장식품, 쓰레기들이 가라앉고 내가 보는 왜곡이 하나 줄어들게 된다.  



 언젠가 나만의 안락하고 아름다운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 물살을 거슬러 강으로, 몰려오는 파도를 맞으며 바다로 헤엄쳐 나가 같은 나의 세계에서 만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자 소망을 꿈꿔본다. 언젠가 다가올 미래라면 그리 멀지 않은 시일 내에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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