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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ul 13. 2021

전환점

이제 남은 건 결승선뿐이다.


적은 이번에 인현 시에서 열리는 자선 마라톤 행사에 참여했다. 첫 참가임에도 불구하고 장거리인 10km를 선택했다. 보통 첫 참가에는 반 코스인 5km를 고르도록 유도하는데도 말이다. 적이 이번 마라톤 전에 달리기를 즐겨하거나, 잘하는 편이라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니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적은 저의 외할아버지가 주신 이름처럼 차분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정적(靜寂). 제 이름과 닮은 단어에 어릴 적부터 또래에겐 많은 놀림을 받곤 했다. 그러나 적은 부정하지 않았다. 적은 조용했고, 차분하다는 칭찬을 어른들에게 받았으며, 본인은 그래야만 했고. 그게 편했으니까. 필요한 말만 뱉었고, 해야 할 동작만 행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체육 시간에 이뤄지는 수행평가 연습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스탠드에서 시간을 보냈다. 점심시간에 인원을 채우기 위해 적을 부르던 친구들도 이젠 사라졌다.      


그런 적에게 마라톤에 나간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멈춰있던 적을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무언가의 변화에는 그럴듯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사람들은 믿어왔다. 하지만 항상 우린 스스로의 고착화된 편견이 깨질 때 놀라곤 한다.      


그가 마라톤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는 완주자에게 주어지는 메달이다. 어렸을 적 친구였던 랑이가 전국체전 단거리 육상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인터뷰한 사진이 지역 신문에 실린 것을 보고, 제 친구에게 떳떳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는 제 이름의 의미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랑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떠올렸다. 제 이름은 정적(靜寂)이 아니라 정적(靜的)이었다는 것을. 비슷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성을 빼놓고 보면 제 이름만 보자면 정말 달랐다. 그 사실을 알아내자마자 가슴속에 억눌려있던 상자가 열리고 용솟음치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적은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해야지만 될 것 같았다. 자신을 옥죄던 사슬을 풀어버린 순간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적은 이제 3분 후면 전환점에 도착할 것이다. 멀리서 붉은 깃발이 보일 때부터 다시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숨을 헉헉대며 뛰는 적의 숨소리는 라인을 따라 서 있는 관중들에게도 들릴 정도로 거셌다. 코와 입을 동시에 호흡해도 벅찼다. 제 두 다리는 지금 쓰러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고작 이 주간의 연습으로 장거리를 뛰는 게 애초에 무리였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적은 나아갔다. 정신력으로, 의지로 움직였다.      


적은 이제 반환점을 지났다. 이제 남은 건 결승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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