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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ul 15. 2021

디스토피아

어리석은 희망


인현 시의 남쪽에는 강이 흐르고, 남은 세면은 우인산과 원경산으로 둘러싸인 형태이다.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고,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관광객들과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우인산과 달리 원경산은 불쑥 튀어나온 암벽과 가파른 경사이며 북쪽 부근에 자리하여 낮에도 어두운 편이라 대체로 찾는 편은 아니다. 대신 우인산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원경산의 절벽과 암벽은 실로 경치가 좋아 전망대의 카페테리아 사장이 돈을 쓸어 모은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인현 시의 북쪽 부근 원경산이 맞닿아 있는 볕이 잘 듣지 않는 어두운 동네에는 기연이 살고 있다. 기연이 사는 동네는 기이하게도 낮과 밤을 구분하기 어렵다. 시계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도통 오전과 오후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사실 기연이 사는 곳이 인현 시가 맞는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산과 맞닿아 있는 산골동네임에도 불구하고 군, 읍, 면이 아닌 시에 속한다. 시내버스가 다니긴 하지만 30분 배차간격을 가진 버스는 이곳까지 잘 오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시내에 나가려면 두 정거장 즈음의 거리를 40분여를 걸어야만 한다.      


기연은 오늘도 아르바이트를 위해 40분여를 걸어 시내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두 번을 환승 해 대략 한 시간 삼십 분 동안을 이동한다. 그러고선 십오 분을 더 걷는다. 이제 막 근무지에 도착했지만 벌써부터 숨이 찬다. 아니, 그냥 가만히 있어도 숨쉬기가 벅차다. 기연의 삶은 견디기조차 버겁다.      


언제부터 이런 삶이었을까. 태초의 기억까지 거슬러 가지 않아도, 드문드문 조각처럼 떠오른다.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좁은 방에서 제 유일한 친구인 토끼 인형을 손에 쥔 채 더위에 허덕이던 때였다. 붉은빛과 파랑 빛이 집을 덮친 순간, 기연은 오롯이 혼자를 살아가야만 했다. 제 아버지가 살인 용의자로 잡혀가, 30년 이상의 형을 집행받는 과정부터 혼자인 다수들 속으로 강제로 집어넣어 졌다. 흔히 말하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가지고 싶은 것은 없어야 하며, 검소해야 했고, 남들 다 누리는 자유는 허용되지 않았다. 욕심은 부릴 수 없는 사치였고, 금기였다. 그리고 덧붙여진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낙인은 쉬이 기연에게 사람을 내어주지 않았다.    

 

기연은 그렇게 색을 빼앗긴 잿빛 인간이 되었다. 희망과 웃음 따윈 저 먼 달나라 이야기였다. 꿈을 꾸는 것도 사치였다. 고아원에 강제로 넣을 땐 언제고 성인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내쫓다니. 사람들의 잔인함에 치를 떨 정도였다. 물론 기연에겐 그럼 감정을 느낄 여유 따윈 없었다. 살 곳을 찾아야 했고, 먹을 밥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      


기연은 복합쇼핑센터의 고객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주로 하는 일은 상품권 발급과 이벤트 행사 안내이지만 매니저가 시키면 행사 기간엔 풍선도 달고, 가끔 식품 코너에서 만두도 굽곤 한다. 다정한 가족들이 장을 보러 온 모습을 보면서 처음 만두를 구울 땐 어쩌면 내 모습이 저럴 수도 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 이후엔 그저 기름이 반들거리고 바삭한 만두를 구워냈다.  

    

만두를 구운 날엔 마치 기름을 뒤집어쓴 듯 온몸에 기름 냄새가 배었다. 오늘도 역시나 같은 날이었다. 분명 해 뜰 무렵에 집에서 나왔는데, 일을 마치고 나니 해는 보이지도 않고, 깜깜했다. 기연에게는 비타민D도 허용되지 않았다.     


퇴근을 하고 정류장에 섰는데 맞은편 건물의 전광판에서 개봉 예정의 영화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만든 대작이라며 각종 유명한 배우들의 출연 소식을 띄우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화려한 CG로 만든 배경은 상상 속 미래 세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있었다. 내용은 기술 개발과 부패로 인해 생긴 환경오염과 계층 격차가 커져 생성된 디스토피아에서 주인공이 활약하며 이를 개혁하는 내용이다.      


기연도 본 적은 없지만 이름을 들어본 배우들이 나온다 하니, 제법 흥행할 것이다. 그나저나 디스토피아가 저런 모습이었나. 사실 기연에겐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지금의 삶이 디스토피아나 그 자체였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생활이 편리해지고, 기계가 척척 대신하는 내용의 뉴스와 각종 매체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세상은 기연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그냥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에 몸을 실으면서 타고 있는 버스가 사고가 나서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매번 하는 생각이지만 기연은 오늘도 무사히 버스 사고 없이 안전하게 버스에서 내렸고, 힘겹게 걸어 집에 도착했다.      

.

.

.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객센터에서 자리만 지키고 있었는데 대뜸 매니저가 찾아왔다. 만두를 구우러 가야 하는 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매니저는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받은 종이엔 기연의 이름과 익숙한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었다. 글자를 다 읽어보기도 전에 매니저가 고함을 질렀다.     


살인범 자식인 거 알면 안 뽑았어! 

너 때문에 얼마나 놀랐는지 알어?

당장 짐 빼, 너 해고야.     


핏대를 잔뜩 세워 지르는 고함과 제 비밀을 알아낸 사람들의 눈초리가 두려워져 아득해가던 때에 선명한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이 무슨 조선인가, 아직도 연좌제를 따지게.     


종이로 된 번호표를 손에 쥔 여성이 이쪽으로 향해 걸어오며 말했다

.      

아- 이거 본인 확인 후에 뽑으신 거 맞아요? 본인 허락 없이 무단으로 서류 뽑으면 불법인데 알고 계시려나 모르겠네. 그리고 사유 없는 무단해고도 해당 사항이고요.     


정연하게 말하는 여성에 매니저는 울그락 붉으락한 얼굴을 감출 노력도 하지 못했다. 본인의 분풀이를 위해 소리치겠구나 싶던 때에 여성이 본인의 번호표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지금 제 차례인데 기다려야 하나요?     


매니저가 무어라 말을 하려 했으나 “제가 좀 급해서요”라는 여성의 차분한 말에 쌩하고 돌려 발을 쿵쿵대며 돌아갔다. 자리에 앉은 여성은 모바일 상품권을 지류 상품권으로 교환하기 위한 업무를 신청했다. 원래라면 기연의 자리에서 마주 보는 벽면의 설치된 키오스크 기계에서 하는 업무지만, 일주일 동안 고장 난 상태로 있어 상담업무를 하며 같이 진행했다. 제 볼일을 마친 여성은 감사 인사를 하곤 유유히 일어나 사라졌다.      


그날은 퇴근할 때까지 매니저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본인을 자를 어떤 궁리를 하고 있겠지. 벌써 이곳에서 일한 지 2년이 지났으니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는 것도 나쁘진 않은 편이다. 다만 본인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되어 변할 눈초리가, 자신에게 향할 손가락질이 많이는 아니고, 아주 조금은 겁날 뿐이다. 옷을 갈아입고 나올 때에 큰길의 사거리에서 교차로 한 부를 뽑아왔다.      


기연의 삶은 절망 그 자체이지만 오늘은 더욱더 절망의 근원에 가까웠다. 살인자의 자식. 사실 본인의 아버지는 누명을 쓴 것이라며 끝까지 부정했지만, 사법부에 의해 살인자가 된 아버지는 남들에겐 범죄자였다. 따라서 본인은 범죄자의 자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두 관계를 떼어놓고 싶었지만, 꽁꽁 얽혀있는 매듭처럼 풀기를 포기했다. 오늘 그 두 관계를 잘라낼 수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알기 전까진. 자신에게 닥친 거대한 일 앞에선 오히려 간단한 정보를 놓칠 때가 많다. 그래서 제삼자나 시간이 지났을 때 그 사실들을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기연은 내용의 중심 안에 있어 외관을 볼 수 없었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라 하는데, 그전까지 기연은 제 앞에 놓인 도구들을 외면해왔다. 제 것이 아니라 생각했고, 탐내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제 집으로 돌아가는 한산한 버스의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한 줄기 빛을 떠올리던 때였을까. 정류장 3개를 지나갔을 때 창문 밖에 보이는 환한 카페에 앉아 있는 흰색 슈트를 입은 여성이 보였다. 기연은 재빨리 멈춤 버튼을 눌렀다. 정류장 외 정차가 되지 않는 버스는 좀 더 달려 다음 정류장에 기연을 내려주었다. 아까 보았던 카페로 기연을 발걸음을 재촉했다. 차선의 반대편에 위치한 카페에 있던 그 흰색 옷을 입은 사람이 오늘 낮에 보았던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잘못 봤을 수도,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기연은 간절히 바랬다. 제발 낮에 자신을 구해주었던 그 사람이기를. 그 사람을 다시 만난다면 왠지 자신의 삶도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리석은 희망도 생겼다. 그러니 제발. 단숨에 달려 카페 안으로 들어온 기연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오늘 본 그 사람은 없었다. 제 허상이었을까. 한껏 올라간 기대감과 고개가 다시 추락하는 순간. 카페의 모퉁이에 있는 문을 열고 나오는 저 흰색 정장 바지가 눈에 띄었다. 처음 보는 바지가 아니었다. 분명히 본 적이 있는 바지다. 한 번밖에 안 봤지만 강렬하게 인상을 남긴 이의 것이다. 바지의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올린 순간, 눈이 마주쳤다. 작은 단말마의 외침을 낸 그 사람은 나를 보고 싱긋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찾았다. 어쩌면 내 인생을 바꿔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한 줄기의 빛이자 어리석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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