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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ul 19. 2021

Sanctuary

세 번째로 찾아오는 만월의 날에 뵙죠


이 글을 누가 볼 지 모르겠지만, 누구라도 볼 수 있으니 남기겠습니다. 저는 사방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있습니다. 저도 제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된 지 알 길이 없습니다.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이곳이더군요. 지난날의 기억은 희미합니다. 처음엔 제 자신이 누군지도 생각나지 않았지요. 마치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대로 대대적인 사기극을 벌인다고 생각까지 했으니 말 다했지요. 이곳엔 약 오십여 명이 안 되는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다들 저와 비슷한 걸 보니 아무래도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건 누군가의 소행이 분명합니다. 어떤 이는 이곳이 피난처라 말합니다. 성벽 밖에는 온 난리가 났다고 말이지요. 누구는 온 마을이 자연재해로 휩쓸렸다고, 또 다른 이는 역병으로 사람들이 다 죽었다고 말합니다. 처음 본인의 이름도 기억 못 했던 이들이 말이지요.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지금은 과거의 일이 희미하게 조각난 파편처럼 떠오르곤 합니다. 제게는 뚜렷한 일이 보이지 않아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식료품과 생활에 대한 지장은 없습니다. 매주 보급창고에 식료품과 필요한 물자가 보급되니 말이지요. 매일 저녁 술로 잠에 드는 머리가 반 벗어진 한 아저씨는 이곳이 지상낙원이라 말합니다.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다는 이유로요. 하지만 저는 이곳이 매우 이상합니다. 도대체 어째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이런 곳에 가둬두고 생활을 지속하게 하는 걸까요. 며칠, 몇 달을 생각을 이루었지만 도통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되었지요. 성벽 밖에 있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비밀을 알고 있다면 제게 도움을 주시길 바랍니다.

 






추신. 아 저는 이곳을 나갈 결심을 마쳤습니다. 앞으로 세 번째로 만월이 찾아오는 날에 저 견고한 성벽 밖으로 나갈 것입니다. 부디 세상 밖이 무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앞날의 건투를 빌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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