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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ul 13. 2021

부산

창문 안에 담긴 드넓은 바다

 



설렘과 졸음, 니트 패턴의 자국이 선명히 새겨진 오른팔과 함께 도착한 부산역은 평범했다. 푹 찌는 듯한 무더위도 아니고,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서 설렘 가득한 맘을 가지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제 대전을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어딜 가도 날 모르는 사람들, 지도가 없으면 헤메고, 알 수 없는 길들이 반가웠다. 

 발길 따라 우연히 만나는 신비하고 행복한 곳을 꿈꿨지만, 마음에 여유가 부족한 내게 이런 행복은 마냥 꾸기만 하는 꿈이었다. 이번에는 아쉬움 안고 돌아왔지만, 다음에는 꼭 도전해보겠다는 결심을 가득 품었다.      

왜 이런 아쉬움이 남았는지 나의 여행기록을 들어보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계획으로 가장한 여행은 첫 번째 계획이 틀어져 가게 된 밀면집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들어 일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갈 여행지 목록과 최적경로 탐색. 사람들이 가봐야 한다고 추천하는 관광명소는 많았지만, 그 중 어디도 내 가슴에 콱 박히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가고싶어서 가기보단,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남들 다 다녀온 곳이라, ‘부산에 왔는데 여기도 안가봤어? 아주 잘못 다녀왔네’ 이런 말을 듣기 싫어서, 그리고 어딜 다녀왔냐는 사람들 말에 당당히 관광지를 요목조목 대지 못하는 내가 ‘여행 하수’로 보일까봐하는 두려움이 어딘가에 깊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이런 특징은 엄마에게 물려받았는데, 우리 엄마는 남들 해보는 건 다 해보라고 하는 사람이다. ‘어디든 가보고, 무엇이든 경험하고, 뭐든 먹어보라’는 엄마의 말들은 그럴듯해 보이고, 굉장히 경험주의에 기반한 얘기 같지만, 실상은 언제 함정이 도사릴지 모른다. 뭐든 해보는 것의 성공 확률을 10%로 극히 낮다. 맛집 검색도 하지 않고, 들어간 음식점은 생각보다 별로였고, 엄마 동료 모씨가 굉장히 추천한 여행지는 가파른 언덕에 엄마는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굉장히 낙천적이고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라 ‘해봤으니 된거지’, ‘이제 알았으니 다음부턴 다른 걸 먹어봐야겠다’라며 쉽게 포장하고서는 잊어버린다.      

이렇게 낙천적으로 살면 정말 좋겠지만, 나는 그 점까지는 받지 못했던 건지, 나와 함께 간 이에게 맛없는 점심을 소개했을 때 굉장히 속상하고 걱정된다. 그래서 여행 일주일 전부터 나는 자정이 넘은 늦은 새벽에 각종 키워드를 조합하여 열렬한 서치와 다른 사람들의 리뷰 목록을 달칵거리며 표를 그려나갔다.      



첫째날은 부산광역시의 캘리포니아 해변을 찾는 여정이었다. 숙소와는 반대편의 끝에 위치한 다대포를 가기 위해 사이에 있는 2 일차 여행지인 남포동과 부평시장, 책방 골목을 당겨와 둘러보기로 했다. 활기차게 떠나자는 말과 달리 내리쬐는 남부의 뙤약볕은 생각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둘러볼 힘이 금세 바닥났다. 월요일이라 대부분의 공공기관과 식당은 휴무상태여서 실내에서 활동을 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하여, 일행인 K의 도움으로 근처 분위기 좋은 카페로 피신할 수 있었다. 우리는 분위기 좋은 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선점했으며 오로지 공사장 뷰만이 남아있었다. 보기만해도 먼지날리는 기분은 이미 미세먼지로 충분하다 못해 남기에 에어컨 앞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주문한 말차라떼를 3층까지 들고 오긴 매우 겁이 났지만, 여느덧 먹었던 말라라떼와는 너무나도 다른 깃털보다 가벼워 마치 원자 상태의 가벼움에 빨대로 부드럽게 저어 마셨다. 


     

책방골목은 소위 말하는 ‘감성’분위기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먼지 풀풀 털고, 어디에 무슨 책이 있는 지 알 수 없으며, 책방의 배열은 온전히 주인의 몫이고, 주인분만이 알 수 있다. 어디선가 정말 귀중한 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설렘에 차근히 둘러보았다. 아쉽게도 내 맘에 쏙 들어오는 그런 책은 이번에 만날 수 없었지만, 다음에 또 좋은 기회가 있겠지~ 생각한다.      



6시 즈음 예정된 멘토링 스카이프를 위해 찾아간 카페 oddeven(홀짝)은 예상치 못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그곳에서 마신 아인슈페너는 크림이 달달하고 고소했으며, 목넘김까지의 과정을 일부러 유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아래의 커피도 맛이 산미가 거의 없는 내가 딱 좋아하는 원두였으며, 크림가 커피가 섞였을 때의 달콤쌉싸름함이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기운이 가득 찬 상태로 도착한 부산광역시의 캘리포니아 해변은 해가 질 무렵의 일몰은 보지 못했지만 은은한 핑크빛이 한국의 특유 감성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에 온 듯 하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미완 상태의 글을 남겨버렸다. 신기루처럼 지나간 3일을 다시 돌이켜보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일들이 너무나 소중해서 간략하게 넘기기가 아쉬웠다. 모든 이야기를 쓰기엔 시간이 너무나도 많이 지나가버린 후일 것 같아 이렇게 미완의 상태로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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