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여행이 아닌 모험을 떠났다. 내가 굳이 관광, 여행과 같은 흔한 단어가 아닌 모험이란 어휘를 사용함은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어젯밤, 오후 열 시가 막 지난 무렵, 진아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가더니 옷장에 있는 편한 옷 몇 벌과 정장 두 벌을 챙기고, 필요한 짐 몇 가지를 캐리어 대충 던져 넣은 뒤에 여권과 지갑을 챙겨 집을 나왔다. 집의 불을 껐는지, 코드는 뽑았는지, 가스밸브는 잠겨있는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채로. 비행기 표가 있는 지도, 가는 데에 얼마나의 시간이 걸릴지 계산조차 하지 않은 채, 무작정 주차장에서 자동차에 올라타 계속 운전했다. 인천공항으로. 진아는 강원도 삼척에 살고 있다. 평소의 상태였더라면 운전해서 인천공항까지 가는 무리한 선택은 하지 않았을 터이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진아는 액셀을 밟으면서도 조급했다. 핸들을 쥔 두 손은 가만둘 수가 없었다. 약 세 시간 삼십 분의 긴 운전길은 더욱더 갑갑하는 데 일조했다.
강원도에 사는 사람이 진아의 모습을 본다면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강릉을 따라 양양 국제공항으로 가거나, 인천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원주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는 것이 더욱 현명할 것임이 분명한데 말이다. 한 가지 얘기하자면, 진아는 평생은 인현 시에서 살아온 사람이라 강원도 삼척에 거주한 지는 약 삼 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길치이자 주변에 관심 없는, 더군다나 지금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두 귀에 자동으로 틀어진 라디오 디제이의 목소리도 들어오지 않는 상태이니 할 말 다했다.
진아는 지금으로부터 약 십 오 분 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깜깜한 밤임에도 공항의 주변은 환한 가로등이 반겨주었다. 피곤함을 뒤로하고 출장을 나가기 위해 택시에서 내리는 직장인들과, 저렴한 항공료를 위해 밤 비행기를 택한 제 몸만 한 배낭을 메고 있는 젊은이들. 사회를 압축해놓은 인천 국제공항에 진아는 주위를 둘러볼 겨를 없이, 제 앞에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뀐 순간, 재빠르게 달려 티켓 발권기로 향했다. 가장 빠른 호주행 비행기는 약 두 시간 후에 출발한다. 공항에 도착했을 무렵, 탑슴심사와 수속이 끝난 호주행 비행기의 이륙 소식이 들려옴에 망연자실하기도 했다. 두 시간이라는 시간은 진아에게 너무나 길었다. 제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 왔던,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고 인생의 절반을 무의미하고 재미없게 살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을 줄 알았다면. 이렇게 살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원경산의 암벽 아래의 가파른 비탈길에서 마주했던 존재를, 현실이 아닌 듯 꿈으로만 치부했던 그날들이 현실이고, 영영 다시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동안에 너를 마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마치 그동안은 심장이 뛰지 않았던 사람인 듯. 그날 나눴던 대화를 넌 기억하고 있을까. 혹시 나를 잊어버리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어린 나날의 시절과는 많이 변해버린 나라. 이번에 너를 만나게 된다면, 꼭 나를 데려가 달라고 해야지. 네가 하는 여행에 따라가야지. 네가 보는 우주를 함께 보고 싶다. 우선, 네가 정말 보고 싶다.
부디 나를 기억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