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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Aug 01. 2021

낚싯줄


진한은 이번 해에도 어김없이 아버지의 가게 앞에서 낚싯대에 줄을 감는 중이다. 진한의 아버지는 원래 어부였지만, 나이가 들고 허리에 있는 지병으로 바다에 나가는 일을 접고, 관광객들이 오고 가기 편한 부둣가 부근에 가게를 얻어 낚시체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원래의 배도 연식이 있는 편이라 먼바다까지 가기엔 무리가 있지만, 체험을 위한 관광객을 상대하기엔 무리 없이 잘 운항하고 있다. 


진한은 방학이라는 이유로 아버지께 제 아침잠을 반납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강제로 빼앗긴 것이지만- 새벽녘에 첫 타임 관광객들이 사용한 낚싯대를 정리하고, 두 번째 타임 예약을 확인하고, 예약자의 수만큼 낚싯대와, 미끼, 구명조끼를 수대로 가게 한편에 진열해놓는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몇 번 바다로 나가긴 했지만, 진한은 바다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낚시는 그저 지루하기만 하고, 아무리 좋은 미끼를 써봐도 물고기들에게 영양가 있는 식단을 제공했을 뿐이었다. 그 덕에 해양생물들은 더욱더 힘차게 헤험칠 수 있었다. 진한은 오늘도 집에서 자고 있는 영혼 없이, 텅 빈 몸으로 익숙해진 동작을 반복할 뿐이다. 하루빨리 짠맛 나는 바닷바람과 수많은 방파제를 벗어나고 싶은 맘이다. 진한의 오랜 꿈은 저 빨간 등대가 안 보이는 곳으로 가서 사는 것이다. 어디라도 좋으니 제발 바다 없는 빌딩 있는 도시로 뻗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매년, 해마다 커져갔다.


그도 이제 먼 꿈은 아닐 것이다. 내년이면 입시 원서를 넣게 되면,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부푼 생각에 실없는 웃음을 내뱉고 있으면, 제 아버지에게 뒤통수 한 번을 얻어맞고 나선, 다시 낚싯줄 감기에 집중했다. 아버진 옆에서 오늘의 파도와 날씨에 대해 항변을 늘어놓고 있지만, 처음엔 너무나도 듣기 싫어 두 귀를 틀어막았지만, 18년 동안 변함없는 얘긴 이제 백색소음이 된 지 오래다. 


아버지의 갑작스레 변한 환한 표정과 거대한 몸짓, 누가 오는지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겠지만, 등짝을 치는 아버지 탓에 고갤 돌려 애써 웃음을 보인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어부가 된 큰 누나가가 새벽 뱃일을 마치고 가게로 특유의 크게 휘젓는 팔과 당찬 걸음걸이로 걸어온다. 본인의 뒤를 이어 바다로 나간 아버지는 큰누나에게 가장 큰 애정을 보였다. 아버지의 영향인 지 항해사가 되겠다며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는 작은 누나는 동창 모임에 나가면 아버지가 꼭 하는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어부인 아버지와 큰 누나, 해녀인 어머니, 항해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작은 누나.

가족들과 달리 저는 바다에 환상, 꿈은 전혀 없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기대를 가득 안고 있던 부모님에겐, 누나들이 충족시켜줬으니 진한은 꼭 바다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덜했다. 물론 가끔 아버지가 흘리듯 하는 말엔 말소하기 직전의 아주 작은 기대가 담겨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버지에 이어 큰 누나가 합류해, 모노가 아닌 서라운드로 듣는 잔소리도 이젠 면역이 되어 타격을 받지 않는다. 두 번째 타임의 예약자들의 낚싯대를 모두 감아 정비해 놓은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합법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도망칠 수 있었다.  하 - 이제 집에 돌아가서 못 잔 잠을 자려했는데, 대학에 가려면 영어 지문을 풀어야 할 것 같다. 진한은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발걸음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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