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서 Aug 09. 2021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어차피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탕. 

총소리가 울리자 레인을 가득 채운 선수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 전국체전 육상 100m 1위를 거머쥔 랑은 오늘도 어김없이 달린다. 제자리에 준비, 그리고 총소리가 울리면 짧지만 먼 거리를 온 힘을 다해 다리는 힘차게 구른다. 누구보다 빠르게, 어제의 자신보다 더 가볍게. 매일, 매번 같은 곳에서 100m 달리기를 반복한다. 변화 없는 일상이 지겹기도 하고, 할수록 실력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기에 가끔 울적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원체 긍정을 인간화한다면 랑이기에 그리 오래가진 않는다.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달릴 뿐이다.


단거리 육상은 우리나라에서 비인기 종목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신체적으로 불리하여 세계대회에서 메달은 그림의 떡과 같고, 너무나 빠르게 끝나버리기에 협찬과 광고도 어렵다. 특히나 육상은 볼거리가 없다. 경기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하기도 전에 단숨에 끝나버린다. 특출 난 기술을 필요로 하지도 않기에 육상선수로서는 수명은 매우 불안정하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거리 육상선수의 이름이 있는가? 안타깝지만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단거리 육상이 가지는 입지이며 현실이다. 


랑은 달리기가 좋았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걷는 것보다 뛰는 것을 좋아했던 어린이 시절을 지나 모두가 속도를 늦춰 걸음을 걷기 시작했을 때도 랑은 계속해서 달렸다. 제 발을 구르며 달릴 대 바람이 얼굴을 지나 머리칼을 날릴 때의 감각, 힘차게 움직이는 두 다리와 발바닥이 땅을 디딜 때 받는 자극, 허벅지를 힘차게 들어 올릴 때의 근육.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이런 랑의 재능을 알아본 체육 선생님은 랑을 초등부 선수로 활동하게 했고, 그 덕에 랑은 육상대회에서 메달을 휩쓸었다. 물론, 우리나라의 입지로 지역신문 기사 몇 개와, 학교에 붙은 현수막이 다 이긴 했다. 체육고등학교에 진학해 고등부에서 활약을 하고,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을 땐 케이블 스포츠 채널과, 유튜브 영상에서 짧게나마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다. 


랑의 집은 그리 부유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난에 허덕이는 편도 아니었다.  랑이 운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육상이 많은 돈이 들지 않은 덕도 있었다. 그리고 랑에게는 전적으로 챙겨줄 수 있는 자상한 전업주부 어머니는 없었지만, 강인하고 현명한 어머니가 있었다. 중견기업의 이사직을 맡고 있는 어머니는 어렸을 적부터 랑의 의견을 듣고, 믿음과 신뢰를 지속적으로 주었다. 어머니는 슬럼프가 온 랑의 이야길 묵묵히 들어주었고, 어깨를 토닥여 우울을 잠재웠고, 안식이 되었고, 어떨 때엔 희망을 일깨워주었다. 그 덕에 랑은 어머닐 따라 강인한 사람으로 자랐다. 


.

.

.


최근 발전되지 않는 속도감에 남들에게 티 내지 못한 스스로의 걱정이 있었다. 며칠간이었을까. 오랜만에 본가에 들렀다가 친구인 '적'을 만나 우연히 따라간 서점에서 본 책 제목이 인상 깊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적은 이 책이 SF의 단편소설이라며 재밌게 읽었다고 추천을 해줬지만, 나는 그 순간 그 문장에 꽂혀 적이 하는 말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마음속에 랑을 좀먹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숙소로 돌아간 밤. 어서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두근대는 맘을 진정시키며 잠에 들었다.



랑은 오늘도 트랙 위에 섰다. 아시안 게임에 나가는 국가대표로서 목표는 메달이다. 어느덧 대회는 일 년 후로 훌쩍 다가왔다. 어차피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온 정신을 집중하여 모든 기력을 모아 있는 힘껏 달려 누구보다 빠르게 가겠다. 

작가의 이전글 예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