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밤이었다

선풍기와 나 사이의 거리

by 헬스코어데일리

한여름, 그 밤은 길고도 더웠다.

잠들지 못한 채 뒤척이는 사이, 오래된 선풍기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선풍기와 친했다. 투박한 철제 몸통을 흔들며 바람을 내뿜던 그 기계가, 어린 나에게는 마치 여름의 수호자 같았다.


더위에 지쳐 까무룩 잠들 때면, 귓가에 맴도는 “위잉—” 소리가 자장가처럼 느껴졌고, 손끝을 스치는 찬 바람은 엄마 손보다 부드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말했다. “선풍기 틀고 자면 죽어”


아무렇지 않게 건넨 그 말은 유난히 또렷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실제로 죽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 경고는 마치 꿈속 괴담처럼 선풍기를 조심하게 만들었다.


한밤중에 일어나 바람의 방향을 조정하고, 목에 수건을 덮고, 타이머를 맞춰두는 습관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름이면 선풍기와 잠을 논다.


하지만 그 관계는 꽤나 섬세한 거리에서 유지된다.

조금만 가까워도 감기 기운이 돌고, 너무 멀면 숨이 막힌다.


밤새 틀어놓은 선풍기 바람에 아침이면 어깨가 굳고, 속이 더부룩해질 때가 있다. 처음엔 잘 몰랐다. 단순한 피로려니 했다. 하지만 몇 번이고 반복되다 보니 알겠다. 선풍기는 우리 몸을 천천히, 아주 조용히 뒤흔들기도 한다.


몸 안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평온한 수면을 방해하고, 때론 마음의 여유까지도 앗아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풍기를 끌 수는 없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은 도시의 열기 속에서 너무 미약하고, 에어컨은 너무 차갑고 건조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선풍기를 켠다.


이불을 가슴까지 덮고, 회전 버튼을 눌러두고, 타이머는 새벽 두 시에 맞춘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바람과 나 사이의 거리를 지키고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가끔은 선풍기를 향해 말을 건넨다. “오늘은 너무 강하게 불지 마”

그 바람이 내 말을 들은 듯, 이마를 가볍게 스쳐 간다. 너무도 조용히, 적당한 세기로.


여름이라는 계절은 언제나 우리를 시험한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한다. 선풍기 하나와의 관계만 봐도 그렇다. 편안함을 얻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그 감각을 길러준다.


삶도 그와 비슷하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상처를 주고, 너무 멀어지면 외롭다. 그래서 우리는 늘, ‘적당한 거리’를 연습하며 살아간다.


어느 여름밤이었다.


선풍기 바람이 잠결에 턱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그 찬기 속에서 잠시 옛날 생각이 났다. 한쪽 벽에 매달린 작은 달력, 창틀에 기대 선풍기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뒷모습, 마룻바닥에 앉아 수박을 먹던 나의 여름. 그 모든 것들이 바람을 타고 내 곁을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문득 알게 됐다.

선풍기는 단지 시원한 바람만을 주는 기계가 아니라, 나의 여름을 구성하는 감각, 추억, 그리고 태도라는 것을.


이제는 선풍기를 켜기 전, 나는 나 자신에게도 묻는다.

지금, 이 바람을 정말 필요로 하는지. 필요하다면, 어떻게 맞을 것인지.


삶의 바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것을 끌어안을 수도 있고, 피해 갈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 내가 어떤 자세로 남아 있는가다.


그 여름밤 이후, 나는 선풍기를 켤 때마다 조금은 더 신중해졌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선풍기 바람 아래에서 내 잠은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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