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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물 한 줌, 여름 밥상이 달라졌다

아침을 참나물로 시작하면 하루가 덜 무겁다

by 헬스코어데일리

햇빛이 뜨겁게 깔린 오후, 냉장고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했다. 뭘 먹지. 점심시간은 이미 훌쩍 지나 있었고, 배는 고팠지만 입맛이 전혀 당기지 않았다. 더위에 지친 속은 뭘 넣어도 더부룩할 것 같고, 기름진 음식은 냄새만 떠올려도 부담스러웠다. 이런 날엔 뭔가 향이 있는 것이 필요하다. 복잡하지 않고, 시원하고, 입안을 맑게 씻어주는 그런 무언가.


참나물.jpg 참나물 무침. / 헬스코어데일리

문득 며칠 전 시장에서 사온 참나물이 떠올랐다. 낱낱이 손질해두었던 그 초록잎은 여전히 싱싱했다. 줄기에서 올라오는 향은 셀러리나 미나리와는 또 달랐다. 더 얇고, 더 부드럽고, 입 안을 간질이는 청량한 향이었다. 찬물에 헹군 뒤 살짝 들기름에 무쳐 밥 위에 올리니 별것 아닌 밥상이 순식간에 살아났다. 숟가락이 다시 빨라졌다. 입맛이라는 게 생각보다 단순한 감각이었다.


참나물은 여름에도 힘이 있다. 보통 나물은 봄이 제철이라지만, 이 풀은 한여름의 더위에도 아삭하고 향긋한 잎을 낸다. 잎은 얇고 단단하며, 줄기는 씹을수록 단맛이 도는 특유의 식감을 갖고 있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 젓가락이면 이 나물의 존재감을 잊지 못할 것이다.


처음 참나물을 알게 된 건 오래 전 산골 여행에서였다. 민박집 밥상에 조용히 놓여 있던 작은 접시, 된장에 살짝 무친 그 풀 한 접시가 나물에 대한 생각을 바꿔놨다. 그렇게 연한데, 그렇게 깊은 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자극적인 것도 아니고 특별한 양념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여름이면 늘 그 맛이 그리워졌다.


참나물은 단순한 향만 가진 채소는 아니다. 100g에 520mg 정도의 칼륨이 들어 있어 몸속 나트륨을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혈압이 높거나 더위에 몸이 쉽게 붓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기능이다. 그런 기능을 굳이 몰라도, 여름날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먹는 참나물 무침 한 접시는 그 자체로 소금기 많은 몸을 달래주는 듯했다.


베타카로틴도 많다. 말로만 들었던 항산화 물질. 참나물 100g에는 1400㎍ 이상의 베타카로틴이 들어 있다는데, 그건 세포의 늙음을 조금 천천히 가게 돕는다고 했다. 여름에는 유난히 피부도 지치고, 피로도 쉽게 쌓이니 그런 작고 눈에 보이지 않는 도움이 고마울 때가 있다.


내게 참나물은 효능보다 먼저 ‘향’이었다. 하지만 알고 나면 알수록, 이 초록의 풀은 그 향만큼이나 많은 일을 조용히 해내고 있었다. 철분도 들어 있어 어지럼증이나 무기력함을 덜어주고, 비타민A는 시력을 보호해준다. 요즘처럼 하루 종일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대에 이런 식재료가 식탁에 있다는 건 작은 위로처럼 느껴졌다.


뇌 기능을 돕는다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베타카로틴이 뇌를 자극하고 집중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했다. 그래서일까. 뜨거운 날, 땀이 줄줄 흐르는 시간에 참나물 한 젓가락을 먹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특별한 근거 없이도 그 느낌은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장에도 좋다. 식이섬유가 많아,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을 준다. 칼로리도 낮아 여름철 식사량 조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다. 위에 부담도 적다니, 열기에 지친 속이 허락하는 드문 식재료이기도 했다.


물론, 누구에게나 딱 맞는 것은 아니다. 찬 성질을 가지고 있어 속이 자주 냉한 사람이나, 설사를 잘 하는 사람은 날것으로 먹기보다 데쳐서 먹는 편이 좋다 했다. 나도 며칠 전 생채로만 먹었을 때 살짝 속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 뒤로는 살짝만 데쳐 먹기로 했다. 무심한 듯 조리한 그 한 번의 데침이, 참나물의 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속엔 훨씬 부드럽게 다가왔다.


조금 다른 걱정도 있다. 자생지에서 참나물을 직접 캐는 사람이라면, 독초와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생김새가 비슷한 식물도 있으니, 눈으로만 보고 판단하기보다 시장에서 재배된 것을 고르는 것이 더 안전하다. 누군가에게는 이 풀 한 줌이 소중한 식사가 될 수 있으니, 모양이나 향만 믿고 덤비는 건 위험할 수도 있다.


여름은 몸이 쉽게 무너지는 계절이다. 입맛도, 기운도, 마음도 흐트러지기 쉬운 때. 그래서일까. 이렇게 조용하고 단정한 식재료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요란하지 않고,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꾸준히,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는 초록빛. 참나물은 그런 식재료였다.


오늘도 다시 밥 위에 올려본다. 들기름에 무쳐놓은 잎 하나하나가 살짝씩 반짝인다. 젓가락으로 한 줌 집어 올리며, 문득 이 초록이 지닌 힘에 대해 생각한다. 너무 시끄럽지 않아서 오히려 믿음이 가는, 너무 화려하지 않아서 더 오래 남는 그런 여름의 맛.


반전이나 결론 없이,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끝나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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