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방향부터 송풍 모드까지… 순서 하나로 달라지는 여름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뒀다.
밖은 아직 8월. 습하고 더운 공기가 창문 너머로 밀려든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리모컨부터 찾게 된다. 익숙하게 눌린 냉방 버튼. 시원한 바람이 돌아오는 동안, 물을 마시고 샤워를 하고, 바닥에 등을 댄다. 그렇게 또 한 번의 하루가 지나간다.
그런데 어쩐지, 에어컨을 끄는 순간이 늘 애매하다.
괜히 찬 공기가 금세 사라질까 봐, 바로 끄자니 아쉽고, 계속 켜두자니 전기세가 걱정된다.
그 무심한 버튼 하나에도 순서가 있다는 걸, 작년 여름엔 미처 몰랐다.
올여름은 조금 다르게 해보기로 했다.
버튼을 누르기 전에 먼저 바람 방향을 위로 조정한다.
처음엔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찬 공기는 원래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렇다면 위쪽으로 바람을 보내면 천천히 돌며 자연스럽게 방 안에 남겠지.
실외기가 멈춘 뒤에도 방 안은 한동안 시원했다.
그제야 에어컨이 아직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끄는 순간까지도.
그리고 요즘은 제습 모드를 자주 쓴다.
냉방을 끄고 제습으로 전환하면 바깥 실외기가 덜 돌아간다고 한다.
전기세도 덜 나오고, 습도도 내려가고, 몸도 덜 축축하다.
특히 창문을 열고 바람을 잠깐 통하게 할 때 이 제습이 제법 쓸모 있다.
옛날엔 제습 모드가 뭔지 몰라 그냥 냉방만 눌렀다.
이젠 툭, 제습으로 바꿔놓고는 조용히 바람을 맞는다.
송풍 모드도 새삼 다시 보게 됐다.
예전엔 무용지물 같았는데, 내부 순환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송풍을 한 시간쯤 돌려놓으면 안쪽에 남은 냉기와 습기가 정리된다.
곰팡이를 막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했다.
지금 쓰는 모델엔 '공기청정' 기능이 따로 있어 그걸로 대신 돌린다.
약간의 습관 차이로 전기세도, 위생도 달라질 수 있다는 말.
그게 이상하게 요즘은 자꾸 마음에 남는다.
에어컨의 종류에 따라 끄는 방식도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건 조금 뒤였다.
인버터형과 정속형.
겉으로 봐선 티가 안 나지만, 속은 완전히 다르다.
인버터형은 켜두는 편이 낫다고 했다. 상황에 맞춰 출력을 조절하는 방식이라, 자주 껐다 켜면 오히려 전기가 더 든단다.
반대로 정속형은 껐다 켰다 해야 낫다고 한다. 계속 돌리면 계속 전기를 먹는다.
전에는 이런 걸 구분하지도 못했다.
이제는 안다.
내 에어컨은 인버터형이다.
그래서 외출할 때 4시간 미만이면 그냥 둔다.
온도를 28도로 올려놓고 다녀온다.
집에 있을 땐 26도, 아주 더울 땐 22도까지 낮추고 금방 다시 올린다.
이 조절 하나하나가 전기세를 얼마나 줄이는지,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면 딱 보인다.
반면, 부모님 댁엔 정속형 에어컨이 있다.
거긴 다르다.
처음엔 강한 냉방으로 20분 정도 시원하게 만들고, 이후엔 제습이나 송풍으로 바꾼다.
하루 종일 돌리지 않고 중간중간 꺼두는 걸 잊지 않는다.
이 차이가 몇 달 전엔 헷갈렸는데, 지금은 당연해졌다.
기계마다 다르게 다가가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가끔은 냄새가 올라올 때가 있다.
처음엔 필터 문제라 생각했다.
하지만 필터를 새로 바꿨는데도 냄새가 날 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창문을 열지 않고 냉방만 계속하면 실내 냄새가 에어컨 안에 붙는다.
이럴 땐 창문을 활짝 열고, 송풍으로 30분 이상 돌려야 한다.
그냥 끄지 말고, 한 번은 바람을 정리해주는 게 좋다.
집이란 게, 문을 열어야 숨을 쉰다.
에어컨도 마찬가지였다.
곰팡이를 막는 것도 결국은 이 송풍 덕이다.
습기가 남은 채 바로 꺼버리면 곰팡이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요즘은 끄기 1시간 전쯤, 예약 기능을 써서 송풍으로 돌린다.
‘운전 > 송풍 > 꺼짐 예약 1시간’
이 과정을 지키고 나니 다음 날 아침에도 에어컨이 깔끔했다.
안쪽에 습기가 덜 남으니, 냄새도 없고, 곰팡이도 피지 않는다.
오래 쓰고 싶다면, 이 한 시간의 여유는 필수다.
에어컨을 끈다는 건 단순한 동작이 아니다.
남은 냉기를 활용하고, 기계를 식히고, 공기를 말리는 과정이다.
아무렇게나 껐던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요즘은, 끄는 순간이 하루의 마무리처럼 느껴진다.
그날의 더위를 비워내고, 기계를 쉬게 하고,
방 안 공기를 정리하면서 나도 함께 숨을 고른다.
익숙했던 버튼이, 이젠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그 작은 동작 안에, 하루를 정리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조용히, 차분히, 그렇게 여름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