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지훈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지훈의 아버지를 반대한 이유는 지훈이었다. 범상한 지훈의 친가와 지훈 아버지의 투박한 언어는 오히려 작은 문제였다. 지훈의 외가에서는 지훈의 아버지와 친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지훈을 용납할 수 없었다. 지훈의 외할머니는 "애 딸린 홀애비"와 결혼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지훈의 존재는 절대적으로 큰 문제였다. 학업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손이 많이 가는 어린 애를 키우는 게 온당하냐며, 미국까지 가서 남의 애나 키우고 있을 거냐며 지훈의 외할머니는 비분강개했다. 결국 지훈의 아버지는 퇴근 후부터 출근 전까지의 모든 시간을 육아와 가사에 할애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자신들의 결혼이 지훈의 어머니가 모교에서 교수로 임용되는 일에 조금도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기나긴 설득을 했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지훈의 동생이 태어났다. 지훈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를 사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모두 지훈을 사랑했다. 지훈이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지훈은 처음으로 엄마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훈은 엄마와 어머니라는 어휘로써 생물학적 어머니와 법적 부모를 구분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그전에도 더러 있었다. 아버지는 이혼의 원인이 엄마 쪽에 있다고 주장했고, 엄마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지훈은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리움의 정서가 발전해 불쑥 실천적 다짐으로 변모한 시점이 삼 년 전이었다.
엄마의 이름과 엄마가 회계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지훈은 페이스북과 회계법인 홈페이지를 통해 엄마를 찾았다. 나흘이 걸렸다고 했다. 지훈의 엄마가 서울이나 분당이 아닌, 대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눈보라치던 2월의 겨울 아침, 지훈은 엄마를 만나러 KTX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