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달아공원

2월 15일

by 화니와 알렉산더

개강을 한 주 앞둔 2월 말 금요일이었다. 지훈의 부모님은 집에 없었다. 그들은 샌디에이고에 있었다. 수요일부터 연차를 쓰고 라운딩을 하러 갔다고 들었다. 수업을 진행하던 서재에서 지훈을 기다리는데, 지훈이 오지 않았다. 나는 지훈에게 빌린 "The Long Walk"를 읽고 있었다. 2015년에 우리나라에서 "롱 워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지만, 2012년에는 해적판만 있었다. 지훈의 책장에는 그가 미국, 영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구입해서 수집한 영어 원서들이 참 많았는데, 그 책도 그중 하나였다. 18살의 스티븐 킹이 집필한 그의 첫 소설을 읽으며 지훈을 기다리는데, 노크 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지훈이 나타났다. 지훈은 혼자가 아니었다. 야생 칠면조 하나를 데리고 왔다.


그 야생 칠면조는 여덟 살이었다. 지훈은 오른손에 '와일드터키 8년'을 들고 있었다. 지훈이 이상한 아이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는 실소를 한 다음 크게 웃었다. "미친놈." 지훈은 대꾸 없이 씩 웃으며 내게 윙크를 했다. 원목 책상에 버번을 내려놓고는 다시 나갔다. 부엌에서 글렌캐런 두 잔을 가지고 돌아온 지훈은 내 손에 들린 책의 표지를 일별하고는 말했다.


- 쌤, 스티븐 킹 읽으시네요. 제가 시의적절하게 와일드터키를 가져 왔습니다. 아시죠, 쌤? 킹이 와일드터키 좋아하는 거?

- 그래? 몰랐어.

- For everyone else in this dump it's Four Roses, but for you I think it's Wild Turkey. (이 쓰레기장의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포로지스이지만, 당신에게는 와일드터키라고 생각해요.) 대표 위스키가 뭐냐는 질문에 바텐더가 이렇게 말하잖아요. 헌터 톰슨이랑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도 와일드터키를 좋아했대요.


지훈은 정말 모르는 게 없었다. 영국 총리의 언어적 습벽과 이탈리아 영화계의 가십부터 케네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까지, 그의 광범한 지식은 늘 나를 놀라게 했다. "도대체 그런 건 어떻게 아는 거야?" 내가 지훈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다시금 열패감을 느끼며 나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걸 말했다.


- "델마와 루이스"에서 델마가 좋아하는 술 맞지?


내가 이 말을 꺼내자 지훈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를 하나하나 비평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해박한 예술적 지식과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동원한 채 말이다. 그의 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왜 천재들이 친구가 없는지 깨달아갔다. 영화 이야기를 하는 동안 칠면조는 투명하게 죽어갔다. 마침내 칠면조가 책상 위에서 죽자 부엌에 간 지훈은 이번에는 사슴을 데리고 돌아왔다. 글렌피딕이었다.


형은 엄마가 몇 명 있어요?


글렌피딕 첫 잔을 비운 지훈이 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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