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달아공원

2월 14일

by 화니와 알렉산더

지훈의 외가에서는 결혼을 반대했다. 극렬한 반대였다고 지훈의 아버지는 언젠가 그 시기를 회상하며 말했다. 오 년이 걸렸다고 한다. 연애 시작부터 결혼까지.


부모의 연애담은 지훈이 내게 들려준 수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였다. 지훈은 나에게 천일야화를 들려주었다. 말 그대로 1001개의 이야기였다. 천일야화 속 왕비는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왕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지훈은 공부하지 않는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서 과외교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엄마가 선생님 원망하지 않게 제가 9월 모의고사 성적 잘 받을게요." 지훈이 나에게 한 귀여운 약속이었다. 내가 방법론을 물으니 지훈은 "매일 한 시간씩 더 공부하면 돼요."라고 말했다. "아, 한 시간에서 두 시간으로?" "매일 두 시간이면 올(all) 1등급 받을 수 있어오." 지훈은 실제로 9월 모의고사에서 올 1등급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천재성을 입증했다.


이 이야기를 하자고 먼 길을 돌아왔다. 지훈의 천한 번째 이야기. 모든 사람에게는 거실과 지하실이 있다. 손님들이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에 비싼 가구들을 배치하고 명문대 학위증을 표구해서 전시하는 거실. 자신만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에 거실에 내놓기 곤란한 것들을 숨기는 지하실.


지훈의 거실은 화려했다. 권세 있는 집안, 물질적 풍요, 우수한 두뇌와 여러 방면에 걸친 뛰어난 재주. 누구나 진심으로 선망할 부류의 사람이었다. 우선 나부터 지훈을 향해 강한 시기심을 품었다. 정도 들었고 귀여운 동생으로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지훈이 미웠다. 모든 걸 가진 지훈이 너무 부러웠다. 지훈의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는 남현동과 고령의 작은 집과 가난한 유년을 아프게 회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랬던 내가 지훈에게 마음 깊이 동정심을 느끼게 된 계기는 마지막 수업이었다. 그날 지훈은 자신의 지하실을 꺼내 나에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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