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
지훈은 시내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유성구청에서 가까운 회계법인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무실에 들어가 엄마를 찾으니 서글서글한 인상의 젊은 직원이 지훈을 응대했다. 자신이 친자임을 밝히지 않은 지훈은 그 직원에게 우회상장 관련하여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본부장님이 또 M&A 전문이시죠." 직원이 답했다. 지훈은 엄마가 상장 자문을 주로 맡는 걸 사전 조사를 통해서 미리 확인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훈의 나이를 20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로 보았다. 외모보다는 분위기였다. 지훈에게는 고등학생 특유의 생동감이나 들뜬 분위기가 없었다. 항상 차분하고 신중했다. 지훈이 구사하는 어휘도 어른의 그것이었다. 엄마 회사에서는 어른처럼 보이는 동시에 부자처럼 보여야 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지훈은 실제로 부자이니까. 부를 과시하는 것은 졸부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게 지훈의 지론이었지만 대전에 올 때는 옷차림에도 신경을 썼다. 셔츠, 자켓, 바지와 신발은 모두 펜디로 통일하고 까르띠에 탱크를 왼 손목에 찼다. 향수는 크리드 어벤투스.
자본주의의 신전과 같은 회계법인에서 부유한 사업가의 외관은 과연 효력을 발휘했다. 고등학생 지훈은 값비싼 가구들이 놓여진 넓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엄마를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그곳에서 직원 두 명이 그의 수발을 들었다. 프랑스 홍차 브랜드인 쿠스미티(Kusmi Tea)를 틴케이스째로 가져다 주었다. 머그, 소서(saucer)와 마카롱을 담은 접시는 모두 빌레로이앤보흐 제품이었다. 지훈을 맞이한 직원은 지훈에게 좋아하는 뮤지션을 물었고 지훈은 "재니스 조플린이요"라고 답했다. 이윽고 바워스앤윌킨스 스피커로 "Me and Bobby McGee"가 흘러나왔다.
재니스 조플린의 "Cry Baby"를 듣고 있는데, 직원이 노크를 하고 방에 들어왔다. "본부장님 돌아오셨습니다. 제가 본부장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지훈은 그를 따라 본부장실에 갔다. 직원이 본부장실의 문을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지훈의 심장이 맹렬하게 뛰었다. 조금 열린 문 틈으로 엄마가 보였다.
오랜만에 아들을 만난 엄마의 반응은 뜻밖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