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적인 친절"이었다고 지훈은 회상했다. 정서가 배제된, 공적인 목적으로 연기되는, 그런 친절함이었다고 했다. 사무실에서 오랜만에 재회한 아들을 대한 엄마의 태도를 지훈은 민원인을 대하는 공무원의 태도나 백화점 직원의 태도에 비유했다. 이십 분 동안 의례적인 대화를 나눈 지훈은 엄마의 사무실을 나왔다. KTX에서 지훈은 엄마를 원망하며 울었다고 했다.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어요." 지훈은 말했다. 얼마간 생각에 잠겨있던 지훈이 말을 이었다.
형, "데드캠프"라는 영화 봤어요?
지훈이 엄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고전 슬래셔 영화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어 나는 어리둥절했다. "응. 그 영화는 왜?"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엉뚱한 생각을 했어요.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그 생각을 오래 했는데요." "어떤 생각?"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커플 있잖아요. 만약 둘이 살아서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계속 사귈 수 있을까?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지훈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글렌피딕 한 잔을 들이켠 뒤 지훈이 말했다. "이런 거예요."
기억하기 괴로운 경험을 함께 겪었다는 사실이 꼭 그 경험을 겪은 사람들 사이의 연대감을 만들어주지는 않아요. 내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을 오히려 피하게 될 수 있죠. 그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우니까.
"형도 그런 경험 있지 않아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인데, 그 친구가 내 상처를 발견해요. 아니면 그 친구를 보면 어떤 아픈 기억이 떠올라요,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러면 우리는 아무리 그 친구를 사랑해도 다시 못 만나요. 아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