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의 미학
'소리도 없이'는 홍의정 감독이 연출한 첫 장편영화다.
홍 감독은 각본을 집필하고 연출한 단편영화 '서식지'(2018)로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한국단편경쟁 섹션에 초청됐다. ('서식지'는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 유튜브 링크)
그녀는 '소리도 없이'로 2021년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백상예술대상 영화 감독상,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슈벨누아경쟁부문 최고작품상, 부일영화상 신인감독상, 아시아 필름 어워즈 최우수 신인 감독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과 대상, 2022년 디렉터스 컷 어워즈 올해의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 Fantasia International Film Festival. 1996년부터 캐나다 퀘벡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장르영화 영화제. 관객이 십만 명이 넘는, 큰 규모의 장르영화제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르영화제로는 포르투갈 포르투(Portu)에서 열리는 판타스포르토(Fantasporto), 카탈로니아/카탈루냐 시체스에서 열리는 시체스영화제(Sitges Film Festival),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브뤼셀 국제판타스틱영화제(Brussels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이 있다. 우리나라의 장르영화제로는 - 필자가 사랑하는 영화제인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있다.
이 영화, 참 모호하다.
모호한 영화는 곧 친절하지 않은 영화다. '소리도 없이'는 관객들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다.
우선 태인(유아인 역)이 왜 말을 하지 않는지 관객은 알 수 없다.
아니, 그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의지의 문제) 말을 할 수 없는 것인지 (능력의 문제), 그것조차 알 수 없다.
태인과 창복(유재명 역)의 전사(前史)도 관객은 알 수 없다.
친절하지 않다는 것은 상업영화로서는 결점이 될 수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훌륭한 영화가 갖추어야 할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감독은 관객에게 상상할 수 있는 광범한 공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모호한 또는 너무 불친절한 영화는 분명 대중예술로서는 실격일 것이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같은 영화를, 나는 대단히 좋아하지만, 글쎄, 이런 영화를 직접 연출할 자신은 없다.
감독은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에 달하는, 다른 사람들의 자본을 투자받아 자신의 예술적 활동을 하는 사람인데 수용자의 반응 또는 상업성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는 걸까, 하는 고민이 든다.
모호한 캐릭터는 분명 매력적이다. 도덕적 측면에서 모호한 캐릭터 말이다.
'소리도 없이'의 주연인 유재명 씨가 연기했던 '비밀의 숲'의 이창준.
이창준은 선한 목적을 위해 악한 행위들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그의 이러한 도덕적 모호성 내지는 도덕적 이율배반성은 그를 2010년대 한국 드라마 주인공들 중 가장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평가받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고 믿는다.
해리포터의 세베루스 스네이프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다지 훌륭하지 않고, 오히려 세인들의 눈에는 추잡하고 비루한 인격을 지닌 사람으로 비칠 법한 인물이 주인공으로서 등장한다.
그는 - 또는 그녀는 - "우연히" 어떠한 상황에 놓인다.
이 상황에서 주인공은 지극히 사적이고 어쩌면 하찮을 수 있을 동기로 어떠한 행위를 수행한다.
그러한 행위가 - 누군가를 구원하는 일처럼 - 고결하거나 위대한 결과를 창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