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달아공원

2월 1일

by 화니와 알렉산더

벌써 15년이나 흘렀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소상히 이야기할 수 없음을 양해해주시기를 바란다. 대부분의 기억은 창고 어딘가에 있는 오래된 가족앨범처럼 잊히고 마는 법이다. 확실한 사실은 동현의 생일날, 내가 동현의 부모님께 대단히 좋은 인상을 남겼다는 것이다. 아, 이건 기억이 난다. 이쪽 동네에 와본 적이 있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나는 방문하는 건 처음이지만 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꽤나 친근하게 느껴지는 동네라고 답했다. 동현의 가족 세 사람이 표정으로써 내게 물어왔다. 시와 이 동네 사이의 연관성이 뭐야? 이렇게 묻는 듯한 얼굴들. 나는 시인 윤동주가 연희전문에 다닐 때 북아현동에서 하숙했으며 시인 정지용도 여기서 살았다고 답했다. "지용소공원의 지용이 정지용이구나." 아버지가 말했다. "정지용 시인은 서울에서도 꾀꼬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며 이 동네를 정말 좋아했대요."


동현의 가족은 모두 이지적인 분위기가 강한 사람들이었다. 동현의 부모님은 나와의 대화를 신선한 지적 자극이라고 여겼는지, 질문도 참 많이 했고 나에게 이야기를 할 기회도 많이 주었다. 그런 배려를 받았다고 해서 나에게 저녁식사 자리가 마냥 편했던 것도 아니다. 동현의 가족은 같은 서울에 살지만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의 UC 버클리 유학생 시절의 이야기나 어머니의 IMF 파견근무 시절의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들. 그때까지 우리 가족 중에 해외에 다녀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이야기를 들으며 대상과 형태를 모르는 분노를 느꼈던 게 기억난다.


저녁을 먹고 차고 앞에서 대문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데, 갑자기 대문이 활짝 열리더니 동현과 닮은 사람이 들어왔다. 머리가 짧고 몸은 말랐으며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동현의 형인가?' 속으로 생각했다. 동현은 나에게 그 사람을 소개했다. "지영이야, 내 동생. 일란성 쌍둥이인데 닮은 거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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