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달아공원

2월 2일

by 화니와 알렉산더

최동현


책 한 권 때문이었다. 십육 년 전에 동양사학과에 지원한 이유는 그 책 한 권 때문이었다. 우리 아빠가 고등학생 시절부터 다녔다는 영천시장의 헌책방에서 나는 그 책을 발견했다. 책을 펼치니 첫 챕터가 백이 열전이었다. 백이 열전을 읽고 나는 그 책을 사랑하게 되었다. 착한 사람의 선의와 선행이 반드시 보답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나쁜 사람의 악의와 악행이 반드시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 사마천은 그렇게 말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구나, 그 더없이 냉철한 분석에 내 마음이 따뜻해졌고 나는 위로를 받았다.


십육 년이 흘렀고, 나는 여전히 그렇게 믿는다. 사실 그러한 믿음은 시간에 비례해서 강해져왔다. 너무 착한 사람이 너무 큰 고통을 겪는 걸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너무 괴로웠다. 나는 종종 너무 괴로웠다.


얼마 전에 만난 동생이 무척이나 여위었고 우울해보였다. 어머니도 동생에게 필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며 걱정하셨다. 오늘 어머니께 동생이 남편을 찾으러 통영에 갔다는 말을 듣고도 그 사실을 짐짓 모른 체하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동생의 목소리를 듣고 동생의 기분을 파악할 수 있다. 아마 통영에 막 도착했을 동생의 음성에서는 근심과 피로가 짙게 배어있었다. 동생이 괴로운 마음을 숨기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건 위험한 징조라고 나는 생각했다. 슬프거나 힘들 때 동생은 언제나 그러한 기분이나 처지를 가족들 앞에서 드러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럴 힘조차 지금의 동생에게는 없는 것이다. 걱정됐다.


동생이 알게 된 걸까? 결국 알게 된 걸까. 작년 연말에 논현동에서 편집자와 저녁을 먹었다. 학동역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홍어삼합을 먹고 수서역에 사는 편집자를 압구정역까지 - 수서역과 압구정역은 모두 3호선이다 - 바래다주는 길에 나는 태현이를 보았다. 압구정역 3번 출구에 있는, 고추탕수육으로 유명한 중식당에 태현이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다. 나도 종종 찾는 식당 안에서 마주보고 있는 태현과 어떤 여자 사이에는 금문 고량주가 놓여 있었다. 그 식당에서 가장 비싼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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