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달아공원

2월 5일

by 화니와 알렉산더

6월 5일이었다. 2012년 6월 5일.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까닭은 아줌마와 조우한 날이 바로 레이 브래드버리가 세상을 떠난 날이기 때문이다. 숱한 기대가 배반되던 대학생 시절, 나의 인생을 지탱해준 것은 영화와 SF소설이었다.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한 영화감독이 스웨덴 감독 잉마르 베리만이었다면, 내가 가장 좋아한 SF소설가는 단연 미국 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였다. 그 시절부터 영어로 쓰인 책은 반드시 원서로 읽는다는 원칙을 고수했던 나는 학교 중앙도서관에서 브래드버리의 영어 원서를 빌려와 남현동 집에서 밤새 읽고는 했다.


브래드버리의 책에는 지진으로 인해서 파괴된 어느 도시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도시에는 단 두 채의 건물만이 무너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한 건물은 병원으로 사용하고 다른 건물을 도서관으로 사용한다.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책을 가지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다. 민감한 감성을 지녔던 대학생이었던 나는 멸망한 세계에서 책을 읽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오래 오래 눈물을 흘렸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일 년 동안 모교 학보사인 대학신문에 SF소설을 연재하기도 했다. 한정식을 파는 두레미담 옆 75동 건물 2층에 위치한 학보사 사무실에서, 다른 학생들이 기사를 쓸 때 나는 SF소설을 썼다. 서울대생이라는 상징자본 덕분에 칠 개월간 어느 일간지에 아서 클라크, 어슐러 K. 르 귄이나 윌리엄 깁슨 등 전설적인 SF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칼럼을 연재할 기회도 얻었다. 유명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니 여러 잡지에서 기고 요청을 받았다. 글을 팔아서 번 - 정중하게 표현하자면 원고비로 받은 - 돈 덕분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사시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내가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레이 브래드버리 덕분이었다. 1920년에 일리노이에서 태어나 거의 평생을 로스앤젤레스에서 살았던 미국인은 그런 식으로 1990년에 경북 고령에서 태어난 가난한 고시생을 먹여 살렸다. 예술은, 예술가가 아닌 가난한 고시생에게, 밥이 된다.


가난한 대학생을 공짜로 즐겁게 해주고 더구나 그에게 적지 않은 액수의 용돈까지 벌게 해준 위대한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동현에게 브래드버리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듣고는 설악산에 오르기로 했던 계획을 변경해 낙산사로 향했다. 낙산사 보타전 앞이었다. 나는 나를 알아본 아줌마를 알아봤다. 몸이 굳은 채 우두커니 서 있던 내게 아줌마가 다가왔다. 아줌마는 태현이가 맞냐고 묻지 않았다. "잘 지냈어?" 사 년 만이었다.


"우리는 불가능한 우주의 불가능성이다." 브래드버리는 말했다. 불가능한 우주의 불가능성이, 2012년 6월 5일,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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