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달아공원

2월 7일

by 화니와 알렉산더

"저한테도 좋은 일이네요."


아줌마의 부탁을 들은 나의 대답이었다. 내가 당신의 요청을 수락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는지 아줌마는 자못 기쁜 모양이었다. 누군가 그렇게 행복하게 웃는 걸 보는 게 참 오랜만이다. 나는 아줌마의 미소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내가 식사를 대접할 요량으로 - 아줌마의 행색이 늘 너무 추레해보였고 당시 수입도 괜찮았다 - 꽤 비싼 음식을 여럿 주문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줌마가 대뜸 계산대 앞에서 등산복 웃옷 주머니의 지퍼를 연 뒤 거기서 구깃구깃한 지폐들을 꺼낼 때 매우 당황스러웠다. 나는 내가 결제하겠다고 나름 완강한 태도로 우겼으나, 아줌마를 이길 수는 없었다.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나중에 돈 벌면, 그때 비싼 거 얻어 먹을게."


점심을 먹은 우리는 양양종합여객터미널에서 헤어졌다. 나는 시외버스 타는 곳까지 바래다 드리겠다고 우겼고, 이번에는 내가 이겼다. 사실 아줌마가 빨리 헤어지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버스에 오르기 직전, 아줌마는 나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두툼한 봉투였다. 무슨 봉투인지 짐작이 갔다.


"밥 굶지 말고 잘 챙겨 먹어. 미안해. 많이 넣지는 못 했어."


나는 돈을 받으며 사과도 함께 받았다. 누차 거절했지만, 아줌마는 한사코 내가 그 봉투를 받아야 한다고 우겼다. "나중에 갚을게요. 건강하세요." 버스가 떠난 승강장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매표소에 갔다. 다음 서울행 버스를 타고 남현동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 시절이 완결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이 아니었다. 느낌이었다. 언어로써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다. 논리로써 설명할 수도 없다. 사랑하는 소설가의 부고를 들은 순간 또는 아줌마와 재회했던 순간 인생의 한 시절이 끝났다. 당신도 알 것이다. 그냥 그런 게 있다. 인생에는.


어떤 생각은 인생을 바꾼다. 양양 여행에서 돌아와 혼자 하루키를 읽으며 캔맥주를 마셨던 2012년, 인생을 바꾼 생각이 나를 찾아왔다. 계기는 명확하다. 내게 과외를 받던 학생과의 술자리였다. 내가 아직 이십대 청춘이었던 시절,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십 년간 일주일 이상 남현동을 떠나있던 시기는 단 두 번 있었다. 논산 훈련병 시절. 그리고 분당 과외교사 시절. 2012년 여름 방학 두 달 동안 나는 분당에서 입주과외를 했다.


일자리는 동현이 알선해 주었다. 보다 정확히는 동현의 아버지가 학생의 부모님에게 나를 과외 교사로 고용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했다는 것이 내가 동현에게 들은 내막이다. 동현 아버지의 대구 고등학교 동창이자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동문인 학생의 아버지가 고3 아들의 과외 교사를 물색하고 있었다. 동문회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동현 아버지가 아들 친구가 아주 영특하고 현명하니 연락을 해보라며 나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는 게 동현의 전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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