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륙 지방에서 평생 살았다. 고령도, 대구도, 서울도 모두 내륙에 있는 고장들이니까. 처음 바다를 본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중학교 1학년 전에 바다를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시간은 잊혀진 시간이니까. 중3 때 우리 학교는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 첫날 석굴암과 불국사를 방문했고, 이튿날에 문무대왕릉을 찾았다. 가무잡잡한 피부의 고령 토박이 아이들은 난생 처음 마주하는 바다를 보며 황홀경에 도취됐다.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동해안 푸른 바다에 뛰어들었다. 처음 경험한 바다의 감촉을 지금도 기억한다.
학창시절, 나에게 특별한 연례행사는 바다를 보는 일이었다. 농번기가 끝나면 우리 가족은 사과 수확을 자축하는 의미로 읍내 중국집에서 외식을 했다. 평소에는 소주와 막걸리만 마시던 부모님은 그 날에는 "빼갈"도 한 병 주문했다. 짜장면과 탕수육과 연태고량주가 놓인 상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호화로운 상이었다. 그러한 식사도 우리집에서는 일 년에 한 번 허락되는 사치였다. 부모님이 빼갈을 마신 다음 날 아침이면 우리는 어김없이 짐을 꾸렸다. 아버지의 93년식 포터를 타고 우리는 바다를 보러 떠났다. 목적지는 넷 중 하나였다. 경주, 포항, 영덕, 울진. 아버지는 동쪽으로 또는 동북쪽으로 바다가 나올 때까지 포터를 몰았다. 어머니가 늦지 않게 수확한 사과를 장에 나가 팔았어야 하므로 우리의 여행은 늘 2박 3일 일정이었다. 경북을 벗어난 적도 없다. 열아홉 살까지 나의 세계는 경북이었다. 서남쪽 끝 고령부터 동북쪽 끝 울진까지.
첫째 딸 서아에게는 여권이 두 개 있다. 서아는 내가 컬럼비아에서 연수를 받던 시절에 뉴욕에서 태어났다. 은우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결혼 초기에 아이 둘을 바이링구얼로 키우기로 합의한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우리나라 최고의 영어 유치원에 보냈다. 매년 네 달 동안은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영어권 국가에서 머물렀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미국, 영국. 서아와 은우는 뉴욕 타임스퀘어에서도, 멜버른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서도 놀라지 않는다. 가끔 아이들을 보며 가벼운 죄책감을 수반하는 질투심을 느낄 때가 있다. 아이들을 보다가 어린 내가 보이는 순간이 있다. 어린 나를 보는 어른이 된 나의 눈에는 이따금 눈물이 고인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나는 대학생 시절에도, 사시를 준비하던 시절에도 매년 바다를 찾았다. 스물세 살에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양양에 갔다. 범상한 여행일 수 있었던 그 양양 여행은 나의 인생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