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1724년 4월 22일, 독일 쾨니히스베르크. 칸트가 태어났다. 1870년 4월 22일, 러시아 울리야놉스크. 레닌이 태어났다. 1899년 4월 22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레닌과 이름이 같은 나보코프가 태어났다. 110년 뒤, 2009년 4월 22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나는 1990년 4월 22일에 태어난 동현의 생일을 축하하러 관악구 남현동을 떠나 처음 가보는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갔다.
마태복음에서 동방박사가 동방의 별을 보고 아기 예수를 찾아 갔다면, 나는 지도를 보고 동현의 집을 찾아갔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손에 지도를 든 채 길을 찾았다. ('상전벽해'와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싶다면, 십오 년 전 우리나라에 스마트폰이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된다. KT가 아이폰을 출시한 시점은 2009년 11월 28일이다.)
가난했던 나는 황금이나 몰약이나 유황처럼 값비싼 선물은 준비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난생 처음 가는 친구집이라고, 나름 무리해서 오백 밀리리터 시바스 리갈 - 태어나서 처음 양주를 사러 갔는데, 어찌나 비싸던지. 이백 밀리를 살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오백 짜리를 들고 나왔다. 칠백이나 천 밀리는 언감생심이었다. - 을 준비했다. 시바스 리갈을 준비한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아는 유일한 양주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고2 때 읽은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등장해서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만약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상실의 시대" 대신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다면, 나의 선물은 조니워커였을 것이다.
북아현동 동현의 집. 나의 이름과 이곳의 이름만큼이나 - 내 이름은 "큰 고개"라는 뜻이다. 아현은 "작은 고개"라는 뜻으로, 아이처럼 작다고 "아이 고개"라고 불리기도 했다.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애고개역의 애고개가 곧 "아이 고개"다 - 내가 자란 집과 이 집의 차이는 대단히 컸다. 큰 고개는 작은 고개에서 한없이 작아짐을 느꼈다. 드넓은 잔디밭에서 동현의 적갈색 벽돌집을 바라보며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를 알현하며 경험했을 동방박사 세 사람의 감정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