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달아공원

1월 30일

by 화니와 알렉산더

술자리에서는 그해 1월 20일 일어났던 용산참사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대학생들이 모이면 정부 비판이 주요 화제로 올랐던 시기였다. 정부와 여당을 옹호하는 대학생들도 더러 있었고, 이 술자리에서도 그러한 구도로 토론이 진행됐다. 동현이는 조금이라도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야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극도로 말을 삼가는 눈치였다.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오니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 안 가져왔는데."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 옆을 돌아보니 동현이가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나를 향해 활짝 웃어보이고는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우리 맥주 한 잔 더 마실래?" 동현은 연기를 길게 내뿜고 말했다. "맥주?" "기네스 맛있는 곳 알아. 좋아해, 기네스?"


우리는 신림동의 유명한 펍에 갔다. 기네스를 한 잔씩 비운 후 나는 필스너 우르켈을, 동현이는 런던 프라이드를 마시고 있는데, 동현이가 대뜸 이렇게 물었다. "동현이는 영문학도 좋아하니?" 나는 영문학은 잘 모르지만, 커트 보니것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좋아한다고 말했다. 내 입에서 나보코프의 이름이 나오자 동현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도 형형했다. "프닌 읽었어?" 펍의 조명처럼 빛나는 눈으로 동현이 물었다. "입학해서 처음으로 읽은 책이 프닌이야." 내가 답했다. 당시 "프닌"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원서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차분한 동현이 그 나름 수선을 떨며 나의 답을 매우 반가워했다. "나보코프 생일." "응?" "내 생일이야." "모레네." 나의 이 답은 동현을 다시금 놀라게 했고, 그는 대단히 기뻐했다. "너 정말 흥미로운 아이구나?"라고 말하며 그는 수첩에 "서대문구 북아현동"으로 시작하는 자신의 주소를 적어 주었다. 이틀 뒤,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나의 인생이 바뀌었다. 불가역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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