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달아공원

1월 28일

by 화니와 알렉산더

고모님이라면 아버님 또래이겠지, 생각했던 나는 고모님을 처음 뵙고 놀랐다. 육십 중반이지만 오십 초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아버님과 달리 고모님은 일흔 살은 훌쩍 넘어 보이셨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아버님과 고모님의 터울이 족히 스무 살은 되는 것 같았다. 나중에 남편한테 들으니 고모님 나이는 예순 하나라고 했다. 노쇠한 고모님은 나와 아이들에게 무척 반갑게 인사하셨다. 나에게는 '우리 태현이'와 결혼해주어서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셨다. 말을 놓으시라고 누차 말씀을 드렸지만 고모님은 끝끝내 경어를 고집하셨다. 서아와 은우에게는 어찌나 궁금하신 게 많던지 끊임없이 질문을 하셨다. 친구들은 어떤 애들인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몸은 건강한지. 은우는 식사를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가며 "말 많은 할머니 누구야?"라고 나에게 물었다.


네가 힘들게 번 돈인데 이렇게 비싼 걸 어떻게 먹냐던 고모님은 회를 매우 좋아하셨다. 십 년 넘게 회를 드신 적이 없다고 했다. "늙은이 혼자 회 먹을 일이 뭐 있어." 내가 그때까지 살면서 누가 그렇게 회를 맛있게 먹는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고모님, 맛있으세요?" 묻자 고모님은 환하게 웃으셨다. 고모님은 남편에게 계속 가격을 물으셨다. "줄돔 이만큼이믄 억수로 비쌀낀데. 이 키로 맞제?" 2kg에 18만 원을 주고 구입했지만 남편은 10만 원에 샀다고 말씀 드렸다. "십 만 원? 니 돈 너무 마이 쓰는 거 아이가." 남편은 자신이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지, 우리 집의 소비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고모님께 자랑스럽게 그리고 정성스럽게 설명해 드렸다. 옆에서 들으니 과장은 하지 않았다. 마치 아들이 엄마에게 나 이만큼 성공했어요, 나 이렇게 잘 살아요, 그러니까 이제 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헤어질 때 고모님은 내게 태현이를 잘 부탁한다며 허리를 깊이 숙이셨다. 이렇게 조카를 사랑하는 고모가 세상에 또 있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에게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당부하셨다. 건강하고 착한 아이들로 자라주어서 고맙다고 하시고는 다시 나를 보며 건강하고 착한 아이들로 키워주어서 고맙다고 하셨다. 남편은 우리에게 먼저 차에 타 있으라고 말했다. 고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차를 향해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 고모님이 남편을 꼭 안아주고 있었다. 운전석에 탄 남편의 붉은 오른쪽 눈이 선연히 떠오른다.


왜 하필 지금, 이 기억이 나는 거지? 이윽고 운전대에 걸쳐놓은 나의 두 손이 강하게 떨린다. 나는 진실을 하나 알아버렸다.


호칭의 장난이다. 삼 년 전에는 조금도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태현 씨에게 고모가 있구나, 생각했다. 내가 무심했든지 어리석었든지 둘 다 해당하든지. 어떻게 그걸 몰랐을까. 시아버님께는 형만 둘 계신다.


시아버님께 누이가 없는데 어떻게 태현 씨에게 고모가 있을 수 있지?


식사를 마치고 가게에서 나오는데 고모님은 다같이 사진을 한 장 찍자고 제안하셨다. 수조에서 회를 꺼내던 횟집 사장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이 찍어드릴 테니 한 번 서보라고 했다.


고모님은 조카의 아이들을, 아니, 당신의 손주들의 손을 잡고 활짝 웃고 계셨다. 나와 태현 씨, 아니, 며느리와 아들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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