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달아공원

2월 12일

by 화니와 알렉산더

특이하다. 지훈이라는 명사를 수식할 수 있는 최적의 수식어는 '특이하다'일 것이다. 지훈은 아주 똑똑했다. 타고난 머리도 아주 좋았고, 금융위원장 아버지와 경제학과 교수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머리가 워낙 좋으니 한국식 교육을 혐오함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잘 받았다. 내가 정말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건 지적 능력이 빼어난 도련님들이 으레 선택하는 직업을, 지훈이 전혀 원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변호사라든가, 의사라든가, 외교관이라든가, 대학 교수라든가, 관료라든가, 그런 직업들 말이다. 그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훈 부모님의 만남도 특이하다.


지훈의 아버지는 공무원 국외훈련 제도를 통해 시카고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먼저 다가간 쪽은 지훈의 어머니였다. 로널드 코스 교수에게 경제학을 사사하던 일년차 박사과정생이었던 그녀는 자신과 동갑이고 낯가림이 심한 지훈의 아버지에게 말을 건넸다. "한국에서 오셨죠? 서기관이시라고 들었어요." 캠퍼스 내 록펠러 기념 성당이었다. 미사를 보고 나오는데, 성당 앞에 피어있는 라벤더가 참 예뻤다고 한다. 지훈의 어머니는 보라색 라벤더를 바라보며 옆에 서 있던 지훈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This Friday. John Hancock. (이번 주 금요일. 존 핸콕*)


존 핸콕* - 시카고의 100층 마천루인 존 핸콕 빌딩. 1969년에 완공되었으며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시카고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현재는 시카고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건물. 2018년부터 공식 명칭은 875 노스 미시간 애비뉴(875 North Michigan Avenue).


"좋아요." 그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날 밤 기숙사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수첩에 적었다. "Rockfeller Memorial Chapel*. 한국에서 오셨죠? 서기관이라고 들었어요. Lavender*. This Friday. John Hancock.) 적고 나서 그는 깨달았다. 시간은? 시간을 묻지 않았다.


Rockfeller Memorial Chapel* - 록펠러 기념 성당

Lavender* - 라벤더


그녀의 번호가 없었던 그는 금요일에 아침 일곱 시부터 정장을 입고 존 핸콕 빌딩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가 언제 올지 몰라서 그는 건물 정문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All the Pretty Horses*"이었다. 아침도, 점심도 굶은 채 카우보이 소년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었지만 벤치에 앉은 그의 그림자는 조금씩 이동했다.


All the Pretty Horses* - 1992년에 출간된 미국 작가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의 소설.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다 예쁜 말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He stood at the window of the empty cafe and watched the activities in the square and he said that it was good that God kept the truths of life from the young as they were starting out or else they'd have no heart to start at all. (그는 빈 카페의 창가에 서서 광장의 활기를 지켜보았다. 그는 하느님께서 젊은이들이 인생을 시작할 때 삶의 진실들을 숨긴 것이 좋다고, 그렇지 않다면 젊은이들은 아예 시작할 마음을 가지지 못할 테니까. 그는 말했다.)


이 구절을 막 읽었을 때 멀리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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