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았어야 했고, 안았어야 했다. 함께 견뎌내자고 말했어야 했다.
며칠을 앓았다. 처음엔 그저 가벼운 감기 같았다.
금세 열이 내리고, 며칠 앓고 나면 아무 일 없던 듯 지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이별은 감기가 아니라, 오래도록 낫지 않는 깊은 고열 같은 것이었다.
착각이었다. 이별은 생각보다 무겁고, 마음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드는 병처럼 나를 사로잡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믿음은, 오히려 더 깊은 외로움만 남겼다.
하루를 버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라는 걸, 그녀 없이 처음 알았다.
처음엔 괜찮은 척, 강한 척, 심지어는 잘된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녀가 원한 건 나 아닌 다른 평온이었고, 나는 그 평온을 위해 웃으며 돌아섰다. 그게 사랑인 줄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 자신을 얼마나 속이고 있었는지도 함께 알게 되었다.
미련은 자꾸만 무너진다. 견고하게 쌓아 올린 척해도, 그 안엔 벌써 금이 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미련은 언제나 그제야 시작된다.
핸드폰을 열었다 닫고, 메시지를 쓰다 지우기를 수십 번.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은 늘 '잘 지내?'로 둔갑했고, 전송 버튼은 끝끝내 눌리지 않았다.
그녀는 아플까? 아니, 나 없이 오히려 괜찮을까? 밤늦게 혼자 걷던 골목길, 그녀가 추위에 어깨를 움츠렸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내가 챙겨주던 얇은 목도리가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그런 사소한 것들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그런 상상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혼잣말로 수백 번을 되뇌었다. “미안해.” “돌아와 줘.” “아직 널 사랑해.” 하지만 그 말들은 공기 속에만 맴돌다 흩어졌다. 그 말들조차 진심을 다하지 못한 내가 미웠다.
그녀를 보내던 그날 밤, 문득 돌아보면 그녀가 울고 있었다. 흐느끼는 그녀의 어깨가 작아 보였다.
나는 보지 못한 척, 들리지 않은 척 걸음을 재촉했다.
나를 놓는 데 집중하느라, 그녀가 부서지는 소리를 외면했다. 사랑이란 게, 그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은 몰랐다. 끝났다고 믿은 순간에도, 그녀는 여전히 나의 하루 곳곳에 살아 있었다.
공기 속에도, 음악 속에도, 식탁 위 빈 잔에도 그녀가 있었다.
지금은 안다. 무심했던 건 내가 아니라, 나의 용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잡았어야 했고, 안았어야 했다. 함께 견뎌내자고 말했어야 했다.
상처를 치유하는 건 이별이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의 이해와 용기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돌아보면 우리는 서로를 너무 몰랐다.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버티는 자존심이 더 컸다. 말하지 못한 오해와 쌓인 감정들이 결국 침묵이 되었고, 그 침묵은 갈등으로 이어졌다. 결국엔 그 침묵이 이별을 불러왔다.
그녀의 상처 위에 내가 남긴 침묵이 덧씌워졌고, 그 침묵은 시간이 지나도 옅어지지 않았다.
나는 멀리서 그녀가 웃는 척을 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고,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게 사랑이라면, 차라리 사랑 따윈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사랑은, 결국 곁에 머무르는 용기라는 걸 알았을 때쯤, 나는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했던 건 기다림이 아니라 방관이었고, 믿음이 아니라 외면이었다.
그녀가 불안해할 때, 내가 곁에 있어주지 못했고, 그녀가 울 때 함께 울어주지 못했다.
그런 나의 부족함이, 결국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놓친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이제야 말하려 한다.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그리고 부탁한다. 지난 일은 그만 덮어두자고.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더라도, 그 조각들 위에 새로운 내일을 쌓아갈 수 있기를. 지금이라도 괜찮다면, 지금이라도 받아준다면, 나는 후회 없이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다시 갈게. 상처까지 껴안고 남은 사랑을 전부 안고, 그대 앞에 설게. 다시는 외면하지 않을게. 그 눈물, 거짓말처럼 사라지게 해줄게. 내 품에서. 우리 둘만의 시간으로, 다시.
그러니, 날 다시 사랑해줘. 이번엔 끝까지 함께할게. 무너진 믿음 위에 우리가 다시 설 수 있다면, 나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너를 사랑할 거야.
흔들리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너를 안고 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