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우주의 온도

찰나가 영원이 될 때

by 진하준

사랑은 때때로 물리법칙을 무시한다.

가령 너와 나 사이의 거리는 단지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너를 바라보던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흘렀고, 내 심장은 중력처럼 너에게 끌려갔다.


그 감정은 계산되지 않았고, 예측되지 않았고, 오로지 '느껴졌다'. 너와 나 사이에 생긴 감정은 그랬다.

우리 둘 사이의 거리는 언제나 애매했고, 시간은 일직선이 아니라 감정에 따라 구부러졌다.

서로를 처음 마주한 순간, 그건 분명 한순간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순간 속에 여전히 살고 있다.


너를 처음 본 건 계절이 바뀌기 직전의 오후였다. 햇빛은 따스했지만 공기엔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고, 사람들의 말소리는 배경처럼 흘렀다. 그때 너는, 말없이 내게 다가왔다.

눈을 마주쳤고, 나는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너의 눈빛엔 이상하리만치 깊은 고요가 있었고 그 고요가 나를 온통 잠식했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많지 않았다.

말보다 더 정확하게 감정을 전하는 것은 때로는 침묵이라는 걸 너는 알고 있었고, 나도 그렇게 배워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잘라낸 말이 아니라, 스며든 시간으로 이해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우주의 작은 뭉쳐짐이라면, 그건 어떤 충돌도, 거리도 두렵지 않은 운명의 밀도일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너의 말투, 너의 걸음걸이, 너의 낮은 웃음소리. 무엇보다도, 너의 ‘조용함’을 사랑했다.

세상은 늘 시끄러웠고,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들리게 하기 위해 더 큰 목소리를 내곤 했다.

하지만 너는 아니었다. 너는 늘 조용했다.

조용히 웃고, 조용히 바라보고, 조용히 다가왔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그렇게 너는 점점 나의 중심이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너 없는 하루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건 사랑이라기보단 종교에 가까웠다.

너의 존재는 나를 매일 갱신했고, 너를 생각하는 시간은 나에게 기도였다.

내 하루는 너의 이름으로 시작되어 너의 잔상으로 끝났다.


그런 나날들이 쌓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감정이 과연 존재할까 의심했던 날들에도, 나는 한결같이 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알았다.

이건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비록 너는 내게 오지 않아도, 너는 내 안에 계속 살아 있다는 걸.


너의 이름이 긴 밤을 지나 모든 빛이 꺼진 방 안에서 너의 이름을 부르던 그 순간, 시간은 멈췄고, 숨결 하나가 영원을 밀어 올렸다.

찰나가 영원이 될 때— 그 말은 믿기 어려운 약속이 아니라 내가 매일 살아내는 현실이었다.


세상은 자꾸 앞으로 나아가라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너를 처음 만난 그날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면, 달빛에 네 목소리가 들릴까. 밤을 틈타 찾아오는 환청은 늘 너의 말투였다.

그 조용한 말, 다정한 숨결,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리는 그 짧은 침묵조차 내겐 음악 같았다.


너는 오색 빛 하늘과 별 숲 사이로 피어난 하나의 꽃 같았다.

멀리서 보면 환상처럼 아름답고, 가까이 가면 손이 닿지 않아 아픈, 그런 존재.

너 앞에서는 모든 계획과 욕망이 사라졌고 나는 그저 너의 옆에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오롯이 나를 비춰주던 너, 어둠이 드리워도 눈부셨던 너, 그 찰나의 사랑이 내겐 영원이라는 걸 너는 알고 있었을까.


사랑이 끝나고 난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는 조금 더 말이 없어졌고, 웃을 때는 한 박자 늦어졌고, 익숙한 길에서도 한 번쯤은 멈춰서 네가 있을 법한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이별은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사랑은 지나가고, 시간은 모든 걸 치유한다고.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는 걸 나는 안다.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에게 시간은 치유가 아니라 더 깊은 새김일 뿐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밤 너를 꿈꿨다.

달빛 아래에서 걷는 너, 손을 내밀면 사라지는 너, 하지만 늘 뒤돌아서 바라보던 너.

낮에는 괜찮은 척 살아가다가도, 밤이 되면 감정이 넘쳤다. 그리움은 자주 꿈의 형태로 찾아왔고, 너는 늘 그 중심에 있었다.


내 꿈에 안긴 너를 한 번 더 가득히 안고 시간을 넘어, 빛이 닿는 세계의 바깥까지 함께 가는 상상을 했다.

현실에서는 닿지 못한 손이 꿈속에서는 꼭 맞닿기를 바랐다.


너의 깊은 미소의 일렁임은 이젠 내 마음의 호수처럼 고여 있다.

거기엔 파도가 없고, 오직 네가 남긴 물빛만이 잔잔히 흔들린다.

얼마나 내가 널 원하는지,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된다.

눈을 감아도 너와 마주치는 지금 이 감각이 그 모든 증명이니까.

나는 다시 살아간다. 그 속에서, 언젠가 다시 올지도 모르는 봄날을 기다린다.


그날이 오면 자유의 날개를 달고 너를 향해 날아가고 싶다.

너의 유일한 숨결이 불어오는 그곳으로.

내 마음속 우주는 너로 인해 작아지고, 깊어지고, 끝내 하나의 별이 되었다.

그 별은 지금도 너를 향해 빛나고 있다.

네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아직도 너를 사랑하는 누군가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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