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고백이 머무는 자리

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이 들었다

by 진하준

금요일 저녁, 과 동기들과 MT 뒤풀이처럼 모인 자리였다.

노트북을 닫고 모인 카페 2층, 스피커에서 플레이리스트가 흘러나오고, 누군가는 방금 찍은 릴스를 편집하고 있었다.

단톡방에서 정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익숙한 자리 하나가 비어 있다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언제나 네가 먼저 와서 테이블 가장자리에 앉았었다. 하얀 에어팟을 한쪽만 끼고, 음료를 천천히 마시며 강의 이야기를 꺼내던 네 모습.

늘 내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오던 그 자리에, 오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없이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예전엔 그 자리에 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이 들었다.

폰 화면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음을 참다 눈이 반달이 되던 순간들.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 빈자리가 왜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 걸까.


멍하니 앉아 있던 찰나,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불어온 바람 속에서 익숙한 향이 스쳤다. 너였다.

적어도 나에겐 분명히 네 향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사람들 사이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그건 그냥 스친 향기였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심장은 괜히 두근거렸다. 나 왜 이러는 걸까.


아니, 이제야 알겠다.널 좋아하는구나... 네가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크게 다가오는 걸 보면.

생각해보면,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순간들이 전부 너로 가득 차 있었다.
우연히 너의 동네를 지나칠 때면, 괜히 한 번쯤 창문을 보게 되고,
버스 안에서 흘러나온 음악 한 구절에도 네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길을 걷다 마주친 풍경 속에, 너와 함께했던 기억이 새어 나왔다.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나눴던 맥주 한 캔, 밤공기에 취한 웃음소리, 너무 피곤해 말없이 걷기만 하던 골목길. 그 전부가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었다.


사소한 우연이 쌓일수록, 너는 내 일상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 중심에는 너라는 사람이 있었고, 너를 생각하지 않는 날이 드물었다.
누구보다 많이 보고 싶은 사람.
하지만, 막상 전화번호를 누른 뒤엔 망설이기만 했다.
“지금은 아닐 거야.”
“괜히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어.”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 망설임은 때때로 후회로 바뀌었다.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에 쥔 휴대폰을 몇 번이고 쳐다보다 다시 주머니에 넣을 때. 그 순간마다 나는 작아졌고, 용기가 없는 내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왜 그때 말하지 못했을까, 왜 단 한 번의 시도도 하지 못했을까. 그런 질문들이 밤마다 나를 덮쳤다.


말하지 못한 고백은 늘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짙어졌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혼잣말처럼 네 이름을 불렀고, 누군가에게 너를 설명하다 말문이 막히곤 했다. 우리가 뭐였는지를 정의할 수 없다는 게, 때로는 가장 아픈 문장이었다.


때때로 그런 생각도 했다. 우리가 정말 친구였을까, 아니면 어설프게 서로를 피해간 연인이었을까. 애매한 거리는 늘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너의 작은 말 한마디에도 괜히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 내가 싫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너는 내게 특별한 사람이었으니까.


사실은, 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냥 그 자리에 네가 다시 앉아주기만을 바랐다.
단 한 번만, 그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너를 마음에 품고 있었는지, 꼭 말하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음이 흘러 넘쳤다.
널 만나러 가는 길에 나는 거울을 보며 연습했다.
수없이 삼킨 그 말,
수없이 다듬었던 고백.

입술이 말라붙고, 목이 매였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 그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걱정됐다.

“좋아해.”

그 단어 하나를 꺼내는 데 걸린 시간은 너무 길었고,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었나보다.
아니,
좋아했던 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너를 좋아하고 있나보다.


네가 다시 돌아오지 않더라도, 이 마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감정이 얼마나 단단하고 조용한지, 나는 너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나는 널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언젠가 너도 알게 될까. 누군가가 조용히 네 옆자리를 지켜왔다는 걸.

언제나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며, 네가 웃을 때 같이 웃고, 네가 힘들어할 때 속으로 함께 울던 그 마음을.

나는 오늘도 그 자리에 있다.

예전처럼, 너를 좋아했던 그때 그 마음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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