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사랑 앞에서

사랑이 너무 늦어서, 미안해.

by 진하준

처음부터 놓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덜 아팠을까.

지금처럼 후회하지 않아도 되었을까.

아니, 적어도 그토록 오랜 시간 너를 떠올리며 자책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곁에 있을 때 그 소중함을 잘 모른다.

매일 마주치는 얼굴, 익숙한 목소리, 늘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마음은 너무 늦게 따라온다.

그 사람이 날 좋아했을 때 나는 전혀 몰랐다. 아니, 모른 척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멀어지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그 사람을 소중히 여겼는지 깨달았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 그 속에서 나는 내 감정을 되새긴다.

돌이킬 수 없음이란, 어떤 후회로도 다시는 닿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너는 항상 내 곁에 있었지. 친구들과 웃는 순간에도, 지친 하루 끝에도. 나의 사소한 말에 귀 기울여 주고, 내가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있을 때도 묻지 않고 곁을 지켜줬던 사람.


그런 네 마음을 몰라준 건 아니었지만, 나는 늘 조심스러웠다.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고, 괜히 멀어질까봐 애써 외면했다.

나는 모든 감정이 한 발 늦게 오는 사람이었고, 너를 향한 마음도 그랬다.

마치 계절이 다 지나고 나서야 그 계절의 색을 기억해내는 것처럼.

그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나는 점점 더 깊이 너를 그리워하게 됐다.


네가 나에게 보냈던 신호들, 너의 작고 조심스러운 배려들을 나는 그저 좋은 친구로서의 관심이라 여기며 넘겼다.

아니, 속으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던 걸지도 모른다.

내 안의 감정이 들킬까봐,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을까봐 피했던 것 같다.

네 눈빛이 점점 무뎌지고, 대화가 점점 짧아질 때쯤에야 나는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먼저 손을 내밀지 못했다.

익숙했던 모든 행동들이 차차 사라지고 있을 때에도 나는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한 채 멀어져만 갔다.


그리고 이제야 안다. 네가 보냈던 따뜻한 눈빛이, 조심스레 다가오던 그 발걸음이, 전부 사랑이었음을.

그 사랑을 나는 알지 못한 채 흘려보냈고, 지금에서야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지금의 우린 달라졌을까.

아니, 그랬다면 너는 울지 않았을 테고, 나도 매일 이렇게 그리워하지는 않았겠지.


네가 멀어지기 전날 밤, 왠지 모르게 불안했던 네 눈빛까지도 이제는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왜 그때는 그 눈빛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요즘 나는 자주 네가 떠오른다. 거리를 걷다가, 바람 냄새 속에서, 우리가 함께 웃었던 날들이 불쑥 불쑥 떠오른다.


어느 카페 앞에서, 네가 좋아했던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괜히 가슴이 아려온다.

전화를 걸고 싶다가도, 이미 늦어버린 지금의 내가 너무 미워진다.

네 번호를 눌렀다가 이내 취소 버튼을 누르는 일이 반복된다.

머뭇거리는 내 손끝에서 너는 다시 멀어진다.


사랑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랑은 늦게라도 온다.


다만, 그 타이밍이 다르기에 우리는 엇갈릴 뿐이다. 지금도 생각한다.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들을, 나 혼자 놓쳐버린 많은 가능성들을. 그래서일까.

아직도 마음 한구석엔 억울함 같은 게 남아 있다.

하지만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저 ‘늦음’이라는 단어가 남긴 결과일 뿐이다.


지금의 나는 너에게 말하고 싶다. 이젠 내가 아플 차례라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를 붙잡지 못한 죄책감이 내 하루를 흔든다고. 뒤늦게 찾아온 감정이지만, 이건 진짜라고.

네가 없는 이 시간 속에서도 나는 너를 배운다.


너를 통해 내가 몰랐던 마음의 결을 알게 되었고, 누군가의 고요한 배려가 얼마나 깊은 사랑일 수 있는지도 깨달았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작고 미묘한 표정 변화에도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 말없이 마음을 내보일 때, 그 의미를 되새기는 사람이 되었다.

너를 잃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성장이라는 말 뒤에는 항상 아픔이 따라온다는 것도, 너를 통해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아픔은, 예상보다 오래 내 안에 머문다. 마치 끝나지 않는 계절처럼.


사랑이 너무 늦어서, 미안해. 하지만 고마워. 너답게, 조용하지만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줘서.

그 진심은, 내가 살아가는 내내 잊히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볼 수 없어도, 너에게 받은 그 따뜻한 마음은 내 안에 살아 있다.

만약 신이 있어서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너에게 달려갔을 거야.

그때는 눈치채지 못했던 내 마음이지만, 이제는 분명하게 느껴지니까.


지금도 그래. 여전히, 그 마음은 내 안에 머물러 있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감정의 결은 쉽게 흐려지지 않는다는 걸 나는 너를 통해 배웠어.

언젠가 나아지겠지. 이 아픔도, 이 그리움도. 하지만 그때까지는 너를 생각하는 지금 이 마음 그대로, 살아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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