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이 선물이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멀리서 네 뒷모습이 점처럼 작아질 때까지, 그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이별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마치 시간 자체가 멈춰버린 것 같았고, 내 심장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로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마음이 얼어붙은 듯했고,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선 채로, 감각이 마비된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세상이 잿빛으로 변해가는 것 같았고, 모든 게 멀어지고, 그 멀어진 끝에 네가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수많은 기억들이 오래된 필름처럼 한 프레임씩 떠올랐다.
웃으며 마주보던 날들, 소소한 일상을 나누던 대화들, 그리고 네가 조용히 내 손을 잡아줬던 그 따뜻한 감촉까지. 이제서야 알게 됐다.
내가 얼마나 따뜻한 사랑을 받아왔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큰 상처를 안겨줬는지. 너는 항상 조용히 내 옆에 있었고, 내가 아플 때면 묻지도 않고 손 내밀어줬다.
하지만 나는 그 따뜻함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익숙해질수록 더 무심해졌고,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게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네가 없는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고, 공허했다.
뭔가 빠진 것 같고, 매일 아침 눈을 떠도 허전함이 가득했다.
너는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잡아 줬지만, 나는 그 따뜻한 손길을 애써 외면했다.
내 안의 감정과 상처만 들여다보느라, 너의 지친 표정과 슬픈 눈빛은 외면하고 말았다.
나에게만 집중하느라, 정작 곁에 있어준 너를 소홀히 대했다.
이기적이었던 내가 이제서야 너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너의 침묵은 이해였고, 너의 기다림은 사랑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익숙함 속에서 조용히 스며들다 어느새 사라진 뒤에야 그 무게를 느끼게 된다.
가까이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땐 왜 그렇게 외롭다고만 생각했을까. 실은 매일이 너로 인해 따뜻했는데. 함께한 시간들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이제야 알게 됐다.
너의 존재는 당연하지 않았고, 매 순간이 선물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너의 사랑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고,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미안함과 후회가 뒤섞여 가슴이 먹먹해진다.
지금 생각하면, 너에게 기대어 울던 순간들이 내가 가장 솔직했던 시간이었다.
그때의 나는 너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고, 너는 그런 나를 아무 말 없이 안아줬다.
아무 말 없이 감정을 받아주는 너에게 나는 왜 더 많은 것을 주지 못했을까.
하지만 그 소중한 순간이 사랑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마음을 다 꺼내 보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너는 지쳐갔다.
수없이 많은 말들을 마음속에 담아두었지만, 정작 네 앞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고마워"라는 말도, "미안해"라는 말도,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해"라는 말도. 괜히 그 말이 무거운 감정을 불러올까 봐, 혹시나 너를 더 멀어지게 할까 봐 두려웠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 후회를 안고 산다.
말을 아끼는 게 진심을 지키는 길이라고 착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침묵이 너를 잃게 만든 걸지도 모른다.
사랑은 정말 타이밍이라는 걸 절실히 느낀다.
말해야 할 때 말하지 못하면, 붙잡아야 할 때 머뭇거리면, 그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멈춰버린 그 순간들이 결국 이별로 이어졌다. 그때 용기 내어 말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덜 후회하고 있을까.
매일을 아쉬움 속에서 보내는 나는 여전히 그 질문 속을 헤매고 있다.
'그때 그 한마디만 했더라면?'이라는 질문이 마음을 놓아주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너를 떠올린다. 시작도 못 해본 사랑이지만, 내 마음속엔 아직도 너와의 추억이 선명하다.
그 순간들은 짧았지만 깊었고, 평범했지만 특별했다. 너와 함께한 계절들, 함께 나눈 눈빛, 그 속삭임들이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돈다.
기억은 흐려질지라도, 너와 마주 앉아 나눈 숨소리, 손끝에 닿던 따스함은 여전히 내 안에서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다.
너라는 존재는 나에게 여전히 따뜻한 감정으로 남아 있다.
어떻게도 되지 않는 이 감정 앞에서, 나는 오늘도 말없이 네 이름을 부른다.
마음 한편이 시리도록 그리워하면서. 사랑은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타이밍을 놓쳐버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네가 없는 세상에서, 조용히 너를 생각하며 하루를 보낸다.
미련이라는 이름의 감정 속에서, 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지 못한 채 여전히 멈춰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