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가끔 너를 떠올린다.
그날 이후, 모든 게 느리게 흘렀다. 세상이 분명히 똑같이 흐르고 있을 텐데, 내 시간만 얼어붙은 것 같았다. 회사에선 여전히 기획안을 준비하고, 지하철은 같은 시간에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계절은 별일 없었다는 듯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고 있었지만, 나만 혼자서 그날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헤어진 건, 딱 일 년 전이었다. 정확히 이맘때, 지금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너무 평범하게, 그러나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하게 끝났다.
큰 싸움도 없었고, 마지막이라는 말도 없었다.
그냥, 어느 순간 연락이 줄어들었고, 서로 눈치를 보며 대화가 짧아졌고, 끝내 아무 말 없이 멀어졌다.
나는 그렇게, 인생의 절반쯤이 사라진 듯한 상실을 안고 그 해의 겨울을 보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갔다. 얄밉게도. 마치 내가 잊길 바라는 듯, 시계 바늘은 멈추지 않았고 달력은 무심하게 숫자를 넘겼다.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여전히 무거운 이름이었지만, 세상은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계절은 제 할 일을 하듯 꽃을 피우고, 햇볕은 따뜻했고, 사람들은 연애를 하고, 웃고, 헤어지고 다시 만났다. 나는 그 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마치 정지된 필름처럼 머물러 있었다.
일 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그저 시간을 견디는 일에만 익숙해졌을 뿐, 삶이 나를 이끌어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혼자 극장에 가서 아무 감흥 없는 영화를 보고, 가끔은 자정이 넘은 거리를 걷고,
어릴 적 좋아했던 노래를 무한 반복했다.
그렇게,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매일 같은 삶을 이어갔다.
그 계절은 다시 돌아왔고, 나는 또다시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너를 생각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익숙한 풍경은 기억을 자극했고, 그 속에서 나는 자꾸만 너를 다시 불러냈다.
무심한 하루에 스민 음악 한 조각, 지나가다 마주친 거리의 냄새 하나가 나를 옛날로 데려갔다.
겨울은 아직도 쉽지 않다.
너와 함께 걸었던 크리스마스 거리, 장갑을 끼고서도 잡았던 그 따뜻한 손, 모두 내 안에 살아 있다.
가끔 그 길을 일부러 걸어보기도 한다. 달라진 건 간판과 조명뿐인데, 내 마음은 아직 그때 거기다.
네가 떠난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식당에서 네가 좋아하던 메뉴는 더 이상 시키지 않게 되었고, 네 생일이 다가오는 날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넘기려 애쓴다.
SNS는 언젠가부터 아예 끊었다.
너의 일상을 확인하지 않기 위해서였지만, 동시에 그걸 모르는 편이 나을 거란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으니까.
어느 날 친구에게서 네 소식을 들었다. 잘 지낸다고,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그 말을 듣고도 웃을 수 있었던 내가 조금 낯설었다.
질투도, 미련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에서, 넌 이미 멀리 걸어나갔다는 사실이 조금 쓸쓸했을 뿐이다.
그 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괜찮은 척 걸었지만, 사실은 그저 멍하니 공허한 거리만 바라보았다.
나는 아직도, 가끔 너를 떠올린다.
네가 쓰던 단어 하나, 너와 함께 갔던 장소 하나, 모든 것이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기억이 나를 찢지는 않는다. 그저 지나간 계절처럼, 조금 아프고, 조금 따뜻하게 머물 뿐이다.
사람들은 사랑이 끝나면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했다.
그 말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나도 어느새 다시 웃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손길을 피하지 않게 되었고, 혼자 보내는 주말이 익숙해졌고, 무엇보다도 ‘나’를 다시 중심에 두게 되었다.
일 년 전, 너와 나는 끝났지만, 지금의 나는, 다시 시작하려 한다.
사랑은 끝났지만, 내가 끝난 건 아니기에.
내가 나를 다시 사랑하기 시작한 지금,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으리란 희망도 함께 품고 있다.
그러니까, 이젠 괜찮다.
잘 지내고 있기를. 나도 그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