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나’의 속도를 다시 찾아야 한다.

by 진하준

커튼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어제와 다르지 않고, 공기의 냄새도 그대로이며, 내 몸이 기억하는 동선까지도 전날을 복사해 놓은 것처럼 똑같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잠깐 믿고 싶어진다. 어쩌면 오늘은 정말로 어제로 되돌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별 이후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끝’을 모른 척한다.

머리는 이미 결론을 알고 있는데, 마음은 아직 결론을 받아 적지 못한다.

그래서 아침이 오면 새로 시작되는 하루가 아니라, 어제의 연장처럼 느껴진다.


잠에서 깨는 순간 잠깐은 착각한다. 어쩌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조금만 더 눈을 감으면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눈을 뜨는 일은 언제나 현실을 불러오고, 현실은 늘 단정하게 ‘지금’을 놓아준다.


그 단정함이 때로는 너무 잔인해서, 마음은 스스로에게 작은 이야기를 지어 들려준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잠시 멈춘 것뿐이라고. 그 말이 거짓인 걸 알면서도, 거짓말이 아니면 버틸 수 없는 날이 있다.


그 거짓말은 나를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너짐을 조금 늦추기 위한 임시 처방에 가깝다.

진짜 이별은 한 번의 대화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루의 곳곳에서 반복해서 확인될 때 완성된다.


손이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찾는 순간, 퇴근길에 무심코 발걸음이 익숙한 방향으로 꺾이려는 순간, 무언가를 보고 너를 떠올린 순간.

그런 찰나들이 모여서, 내게 ‘이제는 정말 혼자’라는 사실을 여러 번 말해 준다


혼자 남은 공간은 익숙한데 낯설다. 물건의 위치는 그대로인데, 공기의 무게가 달라져 있다.

둘이 함께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던 침묵이, 지금은 지나치게 크게 들린다.

TV를 켜 두는 이유가 즐거움이 아니라 소음을 만들기 위해서인 날도 있다.


고요가 깊어질수록 기억이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기억은 내가 원할 때는 잘 떠오르지 않다가, 원치 않을 때는 가장 선명한 얼굴로 나타난다.

문득 들리는 멜로디 한 줄, 누군가가 무심히 흥얼거리는 소리, 익숙한 향이 스치는 순간이면, 나는 순식간에 과거로 미끄러진다.

그 사람의 말끝, 웃음의 온도, 손이 닿던 방식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난다.


밤은 더 정직하다. 낮에는 일정과 사람들 사이에서 감정을 접어 넣을 수 있지만, 밤에는 접어 둘 곳이 없다.

불을 끄면 마음속 빈자리가 더 크게 떠오르고, 창밖의 어둠이 내 안의 어둠과 맞닿는다.

어떤 날에는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얕아진다.

울음이 나오기보다는,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럴 때 나는 깨닫는다.

슬픔이 항상 흐르는 건 아니라는 걸. 슬픔은 때로 흐르지 못하고 고여서, 숨 쉴 공간을 줄인다는 걸.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것들이다.

함께 있을 때의 시간은 ‘우리’의 속도로 흘렀지만, 이제는 ‘나’의 속도를 다시 찾아야 한다.

어제와 똑같은 아침을 견디며, 같은 빛과 같은 공기 속에서 아주 조금씩 다른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

그렇게 하루의 아주 작은 부분부터 바꾸어 가다 보면, 언젠가 아침이 정말로 ‘오늘’로 느껴지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보내야 한다는 말이 잔인한 명령이 아니라, 내가 다시 숨 쉬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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