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그날 밤 이후로 나는 서윤의 메시지를 오래 보게 됐다.
답장을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애매했다. 너무 늦지도 않게, 그렇다고 반갑지도 않게. 읽고 나면 금방 답할 수 있는 말에도 몇 분쯤 일부러 손을 멈췄다. 예전 같으면 “지금 도서관?” 같은 한 줄에도 괜히 기분이 좋아졌을 텐데, 그때부터의 나는 먼저 들뜨는 쪽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미 한 번 혼자 마음을 너무 크게 키웠다고 생각했으니까.
서윤은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평소와 똑같았다.
“어제 잘 들어갔어?”
“오늘 수업 늦지 마.”
“도서관 가면 연락해.”
그 문장들은 이전의 서윤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미 그날 밤 골목에서 본 장면 하나를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되감아 보고 있었는데, 서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무심함이 서운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내가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정당화하려면, 서윤 쪽이 조금쯤은 둔하거나 잔인해야 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 비겁했다.
나는 사실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오해할 권리를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며칠 뒤, 학생회관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였다.
나는 친구 둘과 늦은 점심을 먹고 나오고 있었고, 서윤은 카페 쪽에서 걸어오다 나를 발견했다. 순간적으로 웃는 얼굴이 먼저 보였다. 그런데 내 시선이 닿자마자 그 웃음이 아주 조금 느려졌다. 아마 내 표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준.”
그녀가 다가와 섰다.
나는 친구들이 옆에 있는 게 이상하게 다행이었다. 단둘이 아니면 조금 더 쉽게 모른 척할 수 있으니까.
“어, 안녕.”
“지금 시간 있어?”
“왜?”
내 대답은 스스로 들어도 퍽퍽했다.
서윤은 잠깐 입술을 다물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잠깐만. 얘기할 거 있어서.”
친구 둘이 눈치를 보고 먼저 가 있겠다고 했다. 그들이 멀어지자 학생회관 앞이 괜히 넓게 느껴졌다. 축제 뒤끝이 아직 남아 있어서 바닥에는 테이프 자국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고, 철제 의자 몇 개가 정리되지 않은 채 모여 있었다. 서윤은 한동안 손에 들고 있던 빨대 포장지를 만지작거렸다.
“너 요즘 왜 그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너무 많은 대답이 머릿속에 동시에 떠올라서 아무것도 고를 수 없었다. 네가 다른 남자랑 있었다고. 업혀 갔다고. 나는 그날 너한테 좋아한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완전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고. 그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만 있었으면 모든 게 조금은 나아졌을지 모른다.
그런데 내 입에서 나온 건 전혀 다른 말이었다.
“뭘.”
서윤이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계속 이러잖아. 연락도 그렇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나 원래 이랬어.”
“아니.”
그녀는 아주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안 이랬어.”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가슴에 걸렸다.
나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학생회관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이 어딘가 딱딱해 보였다. 서윤은 한 걸음쯤 더 가까이 와서 말했다.
“내가 뭐 잘못했어?”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또 도망쳤다.
“그런 거 아니야.”
“아닌데 왜 자꾸 이래?”
“그냥 좀 바빠서 그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서윤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 그녀의 머리카락이 뺨에 닿았다. 평소 같으면 무심코 손으로 넘겨줬을지도 모를 장면인데, 그날의 나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서윤은 스스로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작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단,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나오는 표정에 가까웠다.
“바빠도,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하진 않잖아.”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먼저 돌아섰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도 붙잡지 못했다. 아니, 붙잡을 수 없었다. 붙잡으면 결국 설명해야 할 것 같았고, 설명하는 순간 내가 얼마나 우스운 오해 속에 갇혀 있는지도 들통날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정말 이상한 사이가 됐다.
연락이 완전히 끊긴 건 아니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공간을 쓰고, 수업 시간표도 완전히 다르진 않았으니까. 마주치면 인사는 했다. “안녕.” “어, 안녕.” 그 정도의 말은 오갔다.
하지만 그 사이에 있던 부드러운 것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 예전엔 내가 먼저 묻지 않아도 이어지던 대화들이 이제는 두 문장을 넘기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같이 앉지 않았고, 학생회관 앞에서 봐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걸 원하면서도 견디지 못했다.
멀어진 건 내 쪽이면서, 먼저 피한 것도 내 쪽이면서, 정작 서윤이 정말 멀어지는 기색을 보이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번은 중앙도서관 계단에서 서윤과 마주쳤는데, 그녀는 전처럼 웃지 않았다. 잠깐 눈을 마주쳤다가 “수고해”라고만 말하고 지나갔다. 그 짧은 두 음절이 이상하게 서늘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 이 사람도 상처받고 있구나. 그런데도 나는 끝내 먼저 다가가지 못했다.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 건, 서윤이 마지막까지 나를 이해해 보려 했다는 점이었다.
며칠 후 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메시지가 왔다.
“잠깐 나올래?”
나는 그 문장을 한참 보고만 있었다. 나가지 않으면 된다.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1층 로비 앞 벤치에 서윤이 서 있었다. 형광등 아래에서 보니 얼굴이 조금 지쳐 보였다. 아마 나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학기 말은 누구에게나 피곤한 시기니까. 그런데도 나는 그녀 얼굴에서 자꾸 내 흔적만 찾고 싶어졌다.
“왜 불렀어?”
내가 먼저 물었다.
서윤은 손에 쥔 캔커피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네가 전에 이거 마셨잖아.”
순간 아무 말도 못 했다.
예전에 내가 무심코 “자판기 이 커피만 그나마 마실 만해”라고 했던 걸 기억한 모양이었다. 그 사소한 기억력 앞에서, 내가 그동안 혼자 만들고 키워 온 서운함이 잠깐 우스워졌다.
나는 커피를 받지 않고 서 있었다.
서윤이 조금 민망한 듯 손을 내렸다.
“그냥, 얘기하고 싶어서.”
“무슨 얘기.”
“그날 이후로 계속 생각했어.”
그 말에 심장이 한번 세게 뛰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제야 설명이 나오나 싶었다.
그날 밤에 대한 이야기. 그 남자가 누구였는지, 왜 그런 상황이 됐는지, 내가 오해하고 있는 게 뭔지. 그런데 서윤은 내가 기대하던 방향과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내가 널 불편하게 한 게 있으면 미안해.”
나는 잠깐 멍해졌다.
서윤은 이유도 모른 채 여기까지 와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혹시 내게 부담을 줬나, 혹시 너무 편하게 굴었나, 그런 걸 혼자 돌아보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나는 그 앞에서조차 솔직해지지 못했다.
“넌 잘못한 거 없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그것뿐이었다.
서윤은 웃지 않았다.
“근데 왜 이러는데.”
“그냥… 내가 좀 그래.”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첫사랑 앞에서 서툴렀다는 말로도 모자랐다. 나는 그때 그냥 어린애였다. 상대가 알아서 내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고, 그러지 못하면 혼자 상처받고, 설명해야 할 순간엔 입을 닫는 사람. 좋아하는 건 맞는데, 좋아하는 방식이 너무 형편없었다.
서윤은 한동안 내 대답을 기다렸다.
기다리다 지쳤는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 말이 끝이었다.
나는 그 단어가 그렇게 무서운 줄 처음 알았다.
알겠다는 건 이해했다는 뜻이 아니라, 더는 묻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날 서윤은 끝내 커피를 내 손에 쥐여주지 않았고, 나도 붙잡지 않았다. 그녀가 로비 문을 밀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그냥 서 있었다. 아주 쉬운 말 하나면 됐는데. 사실은 그날 네가 업혀 가는 걸 봤다고, 그래서 내가 바보처럼 혼자 상처받았다고, 그 말 한마디면 됐는데. 나는 그걸 또 못 했다.
그 뒤부터 서윤은 정말 조용해졌다.
연락이 줄어든 게 아니라, 거의 없어졌다. 먼저 말을 걸어오지도 않았고, 우연히 마주쳐도 예전처럼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그 변화는 아주 서서히 왔는데도 이상하게 한순간에 빈자리가 커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야 나는 내가 뭘 잃고 있는지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서윤이라는 사람 자체보다도,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내 계절 같은 것들을.
5월은 끝나가고 있었다.
처음엔 벚꽃이 흩날리던 길이 어느새 초록으로 가득했다. 해는 훨씬 늦게 졌고, 밤공기에도 여름 냄새가 아주 조금 섞여 있었다. 봄은 아직 완전히 떠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내게는 이미 끝난 계절처럼 느껴졌다. 서윤과 함께 걷던 학생회관 앞 계단, 중앙도서관 복도, 자판기 앞 좁은 공간들이 전부 이전과 다르게 보였다. 같은 장소인데 거기엔 더 이상 우리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끝내 움직이지 못했다.
사과하면 되는 일이었고, 오해했으면 묻기라도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 간단한 걸 나는 계속 미뤘다. 혹시 이미 너무 늦었을까 봐, 혹시 다 털어놓고 나면 더 초라해질까 봐, 혹시 정말 내가 상상한 대로면 어쩌나 싶어서. 하지만 사실 제일 무서웠던 건 다른 거였다.
그 모든 일이 결국 서윤 때문이 아니라, 내 미숙함 때문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
첫사랑이라서 몰랐던 게 아니라, 몰랐다는 핑계 뒤에 숨고 있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그걸 인정하기엔 나는 아직 너무 어렸다.
그래서 6월이 오기 전까지도,
나는 아무것도 바로잡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