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름이 싫다-1-

여름

by 진하준

나는 여름이 싫다.

사람들은 여름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해가 길어서 좋고, 옷차림이 가벼워서 좋고, 늦은 밤까지 공기가 따뜻해서 좋다고 했다.

누군가는 여름 바다가 좋다고 했고, 누군가는 휴가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들뜬다고 했다.


회사에서도 점심시간만 되면 그런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이번 여름휴가는 어디로 갈지, 바다는 동해가 좋은지 남해가 좋은지, 성수기 전에 예약부터 해야 한다는 둥. 다들 아무렇지 않게 여름을 기다렸다.


나는 그런 대화에 좀처럼 끼지 못했다.
누가 어디를 간다고 말하면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조금 웃고, 다시 모니터를 보는 척했다.

여름은 내게 휴가도 아니고 추억도 아니었다.


그저 견디기 어려운 계절이었다.

에어컨을 아무리 세게 틀어도 피부에 들러붙는 눅눅한 공기, 햇빛 아래 몇 분만 서 있어도 머리가 멍해지는 오후, 퇴근길 아스팔트 위로 올라오는 열기. 여름은 늘 사람을 조금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여름을 싫어하는 이유는 사실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내 방 책상 위에는 오래된 사진 몇 장이 놓여 있었다.


원래는 서랍 안쪽에 넣어둔 것들이었다. 어젯밤 찾던 서류 하나를 꺼내다가 함께 쏟아져 나왔다.

그냥 다시 넣어두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결국 새벽 두 시가 넘도록 바닥에 주저앉아 사진을 한 장씩 넘겨보고 있었다.

사진 속에는 늘 비슷한 얼굴이 있었다.

ChatGPT Image 2026년 3월 18일 오후 10_07_32.png

웃고 있는 얼굴.
고개를 조금 기울인 얼굴.
햇빛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뜬 얼굴.
아이스크림을 먹다 입가에 크림이 묻은 것도 모른 채 웃고 있는 얼굴.
창가에 앉아 손등 위에 내려앉은 빛을 가만히 바라보는 얼굴.


이수아.

사진을 찍을 때마다 카메라를 불편해하던 사람.
그런데 이상하게도 셔터가 눌리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던 사람.


나는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여름 공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빛이 너무 강해서 나무 그림자까지 또렷했고, 수아는 벤치 끝에 앉아 양손으로 종이컵을 감싼 채 웃고 있었다. 날짜를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아직 서로의 습관을 다 알지 못했고, 좋아하는 음식도, 싫어하는 영화도, 화가 날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도 완전히 익숙해지기 전이었다.


그 시절의 수아는 지금 떠올려도 조금 눈이 부셨다.

나는 사진을 뒤집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한참을 사진만 들여다보다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른 채 그대로 책상에 엎드렸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창밖에서는 매미 소리가 들렸다.
한여름 초입 특유의, 지나치게 성실해서 오히려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울음이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열 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목이 뻐근했다.
책상에 엎드린 채 잠든 탓에 팔에는 눌린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고개를 들자 어젯밤 흩어놓았던 사진들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몇 장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몇 장은 책상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걸쳐져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상태로 앉아 있었다.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괜히 한 장이라도 더 들춰보게 될까 봐, 다시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될까 봐.


결국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떨어진 사진부터 주워 들었다.

손에 잡힌 건 수아가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빛이 너무 강해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그래도 웃으려고 애쓰던 얼굴.

나는 잠깐 멈췄다가 그 사진을 다른 것들과 겹쳐 들었다.

“정리 좀 해야겠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사진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쌓아 올렸다.


예전 같았으면 날짜별로 나누고, 잘 나온 사진만 따로 골라 파일로 정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까지 들지 않았다.

그냥 한데 모아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예전의 나는 사진을 정리하는 일을 좋아했다.

하루 중 가장 마음이 차분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찍은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고, 흔들린 사진은 지우고, 구도가 괜찮은 것만 남기고, 빛이 예쁘게 들어온 사진에는 별 표시를 했다.


대학 때는 그게 거의 하루의 마무리 같은 습관이었다.
전공을 살리지는 못했지만 사진은 오래 취미로 남았다. 회사원이 된 뒤에도 퇴근 후 가끔 카메라를 들고 골목을 걷곤 했다.

수아를 만난 뒤에는 더 자주 찍었다.

그 애는 이상하게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특별히 화려하거나 눈에 띄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저녁 빛을 보고 한참 서 있거나, 카페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거나, 길가 화단에 핀 이름 모를 꽃 하나에도 걸음을 멈추는 사람.

나는 그런 순간들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그런 순간 속의 수아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자꾸 카메라를 들었다.

“또 찍어?”

처음엔 그렇게 묻더니,

“아, 잠깐만. 지금 머리 이상하지?”

조금 지나서는 그런 말을 했고,

나중에는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잘 나왔으면 보내 줘.”

나는 그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선명하게. 너무 선명해서, 가끔은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될 정도로.

사진을 다시 한 장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함께 찍힌 몇 안 되는 사진 중 하나였다.

어느 카페에서 직원에게 부탁해 찍은 사진이었는데, 수아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나는 어색하게 입꼬리만 조금 올리고 있었다.


늘 그랬다.
나는 사진 속에서 잘 웃지 못했고, 수아는 그런 나를 보며 꼭 한마디씩 했다.

“좀 웃어 봐. 나랑 같이 있는데 왜 그렇게 심각해?”

“원래 사진 찍히는 건 어색해.”

“찍는 건 좋아하면서?”

“그건 다르지.”

“뭐가 다른데?”

“나는 네가 보이는 쪽이 좋고, 내가 보이는 쪽은 별로야.”

그 말을 했을 때 수아가 잠깐 조용해졌던 게 떠올랐다.


나는 손가락으로 사진 가장자리를 쓸었다.
종이 표면이 조금 바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뭐든 조금씩 빛을 잃는다.
사진도 그렇고, 물건도 그렇고, 사람이 기억하는 방식도 그렇다. 처음엔 또렷하던 얼굴이 어느 순간 목소리보다 희미해지고, 함께 걷던 길의 공기보다 마지막으로 나눈 말 한마디가 더 크게 남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아에 관한 기억은 반대로 흘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는 게 아니라 더 선명해졌다.


그 애가 웃던 방식, 창가에 앉을 때 무릎을 꼭 붙이던 습관, 더운 날이면 찬 음료보다 미지근한 물을 더 자주 마시던 버릇까지.

나는 한숨을 쉬고 의자 등에 몸을 기대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사진을 꺼내 보는 날은 늘 비슷했다.
꼭 무언가가 마음속 깊은 곳을 밀어 올리듯, 지나간 시간을 다시 꺼내 보게 되는 날들. 계절이 바뀌는 순간이라든지, 퇴근길에 우연히 익숙한 향을 맡았을 때라든지,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여름은 진짜 좋지” 같은 말을 했을 때.


그럴 때면 마음 한구석이 천천히 젖어 들었다.
아프다고 말하기엔 무뎠고, 괜찮다고 말하기엔 너무 분명한 감정이었다.


우리는 3년을 만났다.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은 거의 없었다.
누군가 묻지 않으면 굳이 말할 이유도 없었고, 이제는 물어보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처음 몇 달은 다들 조심스럽게 물었다.
잘 지내냐, 연락은 하냐, 요즘은 어떠냐.

나는 그때마다 적당히 대답했다.


잘 지낸다고.
그냥 그렇다고.
각자 바쁘다고.

거짓말은 아니었다.
적어도 바쁘다는 말은.

사람들은 헤어진 연인에 대해서는 금방 익숙해진다.


처음엔 안타까워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더 묻지 않는다.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 서로 편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흐름에 기대 있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자세히 알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나는 여름만 되면 자꾸 그 애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그 애와 함께 있던 빛을 떠올렸다.

유난히 밝던 오후, 차갑게 식은 커피잔, 얇은 블라우스 소매 끝으로 비치던 손목, 덥다고 투덜대면서도 결국 햇살이 좋다고 웃던 얼굴.

수아는 여름을 좋아했다.
그건 내가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취향 중 하나였다.

“이렇게 더운데 뭐가 좋아.”

예전에 내가 그렇게 물은 적이 있다.

그날도 꽤 더운 날이었다.
도로 위 공기가 흔들릴 만큼 뜨거웠고, 공원 벤치는 오래 앉아 있기 힘들 정도로 달궈져 있었다.

나는 그늘 아래에서 부채를 흔들고 있었고, 수아는 벤치 끝에 앉아 고개를 들어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빛을 보고 있었다.


“난 좋은데.”

“여름이?”

“응.”

“이유는?”

수아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 햇빛이 잘게 부서져 내려앉았다.


그 애는 손가락을 천천히 오므렸다 펴며 말했다.

“햇살이 만져지는 것 같잖아.”

나는 웃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몰라. 그냥 그래.”

“이상한 소리 하네.”

“원래 좋은 건 조금 이상해야 기억에 남는 거야.”

그 말을 하고 수아는 웃었다.


아주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나는 그때도 셔터를 눌렀다.

책상 옆에 세워둔 카메라를 바라보다가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을 조금 열자 축축한 밤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멀리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잠깐 스쳤다.


누군가는 아직 여름밤을 즐기고 있을 시간이었다.

나는 창틀에 기대어 한동안 밖을 내려다봤다.
도로 건너편 편의점 불빛이 환했다.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안쪽의 차가운 공기가 거리로 흘러나왔다.

저 빛 속으로 들어가 캔맥주 하나를 사 올까 생각했지만, 이내 그만뒀다.


냉장고 안에도 마실 건 있었다.

문제는 목마름이 아니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사진을 챙기다가, 맨 아래 깔린 한 장에 손이 멈췄다.

그건 우리가 연인이 되기 전의 사진도 아니었고, 함께 찍은 사진도 아니었다.


그저 여름날 공원의 일부를 담은 평범한 풍경 사진이었다. 벤치와 나무, 쏟아지는 빛, 멀리 지나가는 사람들. 언뜻 보면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사진.


하지만 나는 그 사진이 찍힌 날을 기억했다.


수아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

그날 나는 별다른 목적 없이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주말마다 집에만 있으면 월요일이 더 빨리 오는 기분이 들어서 일부러 밖으로 나가곤 했다.


대학 때처럼 거창하게 무언가를 찍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햇빛이 괜찮으면 셔터를 누르고, 그림자가 예쁘면 한 장 남기고, 그러다 마음에 드는 컷이 하나쯤 생기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날도 그랬다.
공원 벤치와 나무 그림자를 몇 장 찍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말했다.

“저기요.”

나는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본 얼굴이었다.
밝은 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막 산 듯한 아이스커피가 들려 있었다. 머리카락 끝이 약간 젖어 있었는데, 아마 더위 때문에 묶었다 풀었다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얼굴보다 표정이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서도 어색해하지 않는 표정.
미안함보다 호기심이 먼저인 얼굴.

“사진 찍는 거예요?”

그게 수아가 내게 처음 건넨 말이었다.

나는 정말 잠깐 대답을 잊었다.


뜬금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와서. 마치 원래 서로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목소리였다.

“네.”

겨우 그렇게 대답하자 수아는 내 카메라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아까부터 계속 찍길래요. 뭐 찍나 궁금해서.”

“그냥… 풍경이요.”

내가 조금 민망해서 카메라 액정을 내려다보자 수아는 벤치 쪽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뭐가요?”

“여기요. 햇빛이.”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웃었다.
참 이상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여름 한복판의 공원에서, 땀을 식히기도 바쁜 시간에, 초면인 남자에게 다가와 한다는 말이 햇빛이 좋다는 거라니.

수아는 내 표정을 읽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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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들리죠?”

“조금요.”

“괜찮아요. 저 원래 좀 이상한 소리 많이 해요.”

그러고는 내 옆 빈 벤치를 가리켰다.


“앉아도 돼요?”

나는 이유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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