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수아는 내 옆 벤치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나무 그늘 아래라고는 해도 여름 공기는 여전히 뜨거웠고, 벤치에는 햇빛이 닿았다가 빠져나간 자리가 미지근하게 남아 있었다.
수아는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커피를 무릎 위에 올려두고 한 번 길게 숨을 내쉬었다.
“더우시죠?”
“좀요.”
“저도요. 근데 집에만 있기는 싫어서 나왔어요.”
나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꼭 나와 비슷한 이유 같았다. 딱히 갈 데가 있어서 나온 건 아니고, 그렇다고 집에 계속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는 날.
그런 날은 이상하게 밖의 더위가 더 견딜 만했다.
수아는 벤치 앞 바닥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를 내려다보다가 내 쪽을 슬쩍 돌아봤다.
“원래 사진 자주 찍으세요?”
“가끔요.”
“가끔 치고는 아까부터 엄청 많이 찍던데.”
“오늘 빛이 괜찮아서요.”
“아.”
수아는 금방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조금 웃었다.
“그 말, 왠지 멋있네요.”
“안 멋있는데요.”
“아니에요. 되게 그럴싸해요. 오늘 빛이 괜찮아서요.”
장난스럽게 내 말을 따라 하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수아는 그걸 놓치지 않고 말했다.
“웃을 줄도 아네요.”
“제가 원래 안 웃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조금요.”
“실례인데요.”
“죄송해요.”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눈은 웃고 있었고, 입꼬리는 여전히 올라가 있었다.
이상하게 불쾌하지 않았다. 초면인데도 어색하게 선을 긋는 느낌이 없었다.
말을 오래 섞은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나는 카메라를 무릎 위에 올려둔 채 물었다.
“근데 모르는 사람한테 원래 이렇게 말 잘 걸어요?”
수아는 잠깐 생각하는 척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럼요?”
“가끔요.”
“그게 더 수상한데.”
수아는 작게 웃더니 컵에 꽂힌 빨대를 한 번 만지작거렸다.
“그냥… 궁금해서요.”
“뭐가요?”
“사진 찍는 사람은 뭘 보나 해서.”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질문이 예상보다 조금 더 안쪽을 건드린 탓이었다.
누군가 사진에 대해 물어보면 보통은 카메라 기종이라든지, 어디를 자주 찍느냐든지, 그런 쪽이었다.
뭘 보느냐는 질문은 좀 달랐다.
나는 잠시 공원 쪽을 바라봤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떨어지고 있었고, 멀리서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거의 없었지만 가끔 미세하게 잎이 흔들리며 빛의 방향이 바뀌었다.
“잘 모르겠네요.”
“그게 대답이에요?”
“진짜로요. 그냥… 눈에 걸리는 걸 찍는 거죠.”
“눈에 걸리는 거.”
수아는 그 말을 천천히 따라 했다. 꼭 머릿속에 한 번 넣어보는 사람처럼.
“그럼 저는 아까부터 눈에 안 걸렸어요?”
나는 순간 수아를 쳐다봤다.
수아는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 뒤에는 가벼운 농담만은 아닌 무언가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지금은 걸렸죠.”
“다행이네.”
“원래는 풍경 찍으러 나온 거라서요.”
“저도 풍경이잖아요.”
그 말에 결국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수아도 따라 웃었다.
여름 공기 속에서 그 웃음은 생각보다 가볍게 퍼졌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어색한 침묵은 아니었다. 그냥 서로 조금 숨을 고르는 시간에 가까웠다.
수아는 고개를 뒤로 젖혀 나뭇잎 사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햇빛이 얼굴 한쪽에 닿자 눈을 조금 찡그렸다.
“진짜 밝다.”
“아까는 햇빛이 좋다면서요.”
“좋은 거랑 눈부신 거랑은 다르죠.”
“방금까지는 같은 말처럼 하던데.”
“말은 원래 조금씩 바뀌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수아는 손을 들어 빛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햇빛이 잘게 잘려 얼굴 위에 떨어졌다.
나는 무심코 카메라를 들었다. 습관처럼 파인더를 들여다보는데, 수아가 눈치채고 곧장 나를 봤다.
“지금 찍으려고 했죠?”
“아니요.”
“거짓말.”
“아직 안 찍었어요.”
“찍으려고 한 건 맞네요?”
나는 대답 대신 카메라를 내렸다. 수아는 이긴 사람처럼 웃었다.
“초상권 있어요.”
“그럼 안 찍을게요.”
“그건 또 너무 아쉽고.”
“어쩌라는 거예요.”
“잘 나오게 찍어 주세요.”
나는 픽 웃었다. 방금까지 초상권을 말하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수아는 컵을 벤치에 내려두고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리고 정말 사진을 찍히는 사람처럼, 그러나 아주 어설프게 자세를 바로 했다.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왜요?”
“너무 의식하니까 이상해요.”
“아.”
수아는 머쓱한 듯 웃더니 다시 원래대로 앉았다.
“그럼 원래대로 있을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셔터를 눌렀다.
찰칵.
수아가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지금 찍었어요?”
“원래대로 있으라며요.”
“와, 너무한다.”
“잘 나왔을 수도 있죠.”
“보여 줘요.”
나는 액정을 돌려 수아에게 보여줬다. 수아는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잠깐 말을 잃었다.
사진 속 수아는 방금 웃음을 거두고 나를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놀란 표정이 반쯤 남아 있었고, 햇빛이 눈가에 걸려 있었다. 꾸민 것 없는 얼굴이었는데도 이상하게 생생했다.
“이거…”
“별로예요?”
“아니요.”
수아는 다시 액정을 봤다. 조금 전보다 더 조용한 얼굴이었다.
“생각보다 괜찮네요.”
“생각보다?”
“제가 사진 찍히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왜요?”
“어색해서요. 제가 저 아닌 것 같고.”
그 말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나도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찍는 쪽이 훨씬 편했다. 나는 화면을 끄며 말했다.
“저도 그래요.”
“그러네요.”
“뭐가요?”
“아까 했잖아요. 자기는 보이는 쪽이 좋다고.”
나는 방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 눈을 깜빡였다. 수아도 잠깐 멈췄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수아는 곧바로 시선을 피하며 말을 바꿨다.
“아니, 그런 느낌일 것 같다고요. 사진 찍는 사람들은 보통 그렇지 않나?”
“그런가.”
나는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다. 수아는 빨대를 입에 물고 얼음을 한 번 굴렸다.
컵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 보니 땀이 식으면서 옷이 등에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여름의 오후는 이상하게 느렸다. 시간이 흘러가고는 있는데 체감은 그보다 훨씬 더디었다.
수아는 갑자기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작게 아, 했다.
“저 이제 가야 해요.”
“벌써요?”
말하고 나서 나도 조금 놀랐다. 붙잡을 만큼 친해진 것도 아닌데, 생각보다 아쉽다는 감정이 먼저 튀어나왔다. 수아도 그걸 들은 듯 눈을 조금 크게 떴다가 웃었다.
“왜요. 더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냥… 생각보다 안 심심해서요.”
“그거 칭찬 맞죠?”
“아마도요.”
수아는 벤치에서 일어나 옷자락을 한 번 털었다. 그리고 내 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또 우연히 만나면 더 안 심심하게 해 드릴게요.”
“우연히요?”
“네.”
수아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말했다. 마치 정말 우연이 다시 찾아올 거라고 믿는 사람처럼.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게 자주 있나요?”
“있을 수도 있죠.”
“너무 낙관적인데.”
“좋은 건 보통 그렇게 시작되거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수아를 올려다봤다. 햇빛이 등 뒤에서 쏟아져 얼굴이 더 환해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이상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그 말들이 전부 허투루 들리지는 않는 사람.
수아는 벤치 옆에 놓아둔 커피를 다시 들었다.
“아, 맞다.”
그리고 무언가 떠올랐다는 얼굴로 나를 봤다.
“사진. 보내 줄 수 있어요?”
“연락처도 모르는데요.”
“그러네요.”
수아는 잠깐 망설이는 듯하다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럼 알려 줄게요.”
그렇게 쉽게 연락처를 주고받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저장했다.
이름을 입력하는 칸에서 잠시 멈췄다.
“이수아.”
수아가 먼저 말했다.
“수아라고 저장해요.”
“최현우예요.”
“그건 알아요.”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네?”
“방금 화면에 떴어요.”
그제야 나는 휴대폰 화면 위쪽에 표시된 내 이름을 봤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이름이 뜨는 기능 때문이었다.
“아.”
“놀랐어요?”
“조금.”
“왜요. 제가 이름 맞히면 안 돼요?”
수아는 웃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고는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럼 가 볼게요, 현우 씨.”
방금 저장한 이름을 바로 불러 버리는 목소리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는 또 한 번 대답을 놓칠 뻔했다.
“네. 조심히 가요.”
수아는 뒤돌아서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몸을 돌렸다.
“사진 꼭 보내 줘요.”
“잘 나온 거 있으면요.”
“방금 건 괜찮았잖아요.”
“생각보다?”
수아가 웃었다.
“네. 생각보다.”
그 말을 남기고 수아는 천천히 공원 길을 걸어갔다. 여름 햇빛이 어깨 위로 쏟아졌고, 흰 블라우스 자락이 걸을 때마다 조금씩 흔들렸다. 나는 한동안 그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유는 잘 몰랐다. 그냥 시선이 쉽게 거두어지지 않았다.
수아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나는 카메라 액정을 다시 켰다. 방금 찍은 사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햇빛 아래에서 나를 돌아보던 얼굴. 놀란 듯하면서도 웃음이 남아 있던 눈.
나는 그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무의식처럼 생각했다.
아마, 또 만나게 될 것 같다고.
그건 근거 없는 예감이었다. 이름과 연락처 하나 주고받았다고 해서 인연이라 부르기엔 아직 얕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렇게 느껴졌다. 여름날의 빛이 너무 선명해서였는지, 수아의 말투가 지나치게 자연스러워서였는지, 아니면 처음 보는 사람 같지 않은 그 기묘한 익숙함 때문이었는지.
나는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벤치에는 아직 수아가 앉아 있던 자리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착각이었을 것이다. 한여름의 벤치는 누구의 체온과 상관없이 원래 따뜻하니까.
그래도 나는 괜히 한 번 더 그 자리를 내려다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휴대폰이 한 번 울렸다. 낯선 번호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저예요. 아까 공원에서 만난 이상한 사람.]
나는 걸음을 멈추고 화면을 봤다. 그 짧은 한 줄이 이상하게 웃음을 불렀다.
곧이어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사진 기다릴게요.]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답장을 보냈다.
[생각보다 잘 나온 게 있으면 보내 드릴게요.]
보내고 나서 조금 유치했나 싶었는데, 수아는 금방 답했다.
[생각보다, 좋아요.]
[그 말.]
나는 그 문장을 한 번 더 읽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주 조금 웃었다.
그날 저녁,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면서 나는 평소보다 오래 화면 앞에 앉아 있었다. 비슷한 풍경 사진들 사이에 수아의 얼굴이 섞여 있었다. 우연히 찍힌 것처럼 자연스럽고, 그래서 더 오래 눈이 가는 사진.
파일명 앞에 날짜를 적고 저장한 뒤에도 한참 동안 창을 닫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한 번 더 확대해서 봤다.
빛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 같았다.
잡히지 않을 만큼 가볍고, 그런데도 이상하리만큼 선명한.
나는 그날의 사진을 따로 폴더 하나에 옮겨 두었다.
이름은 별 뜻 없이 붙였다.
여름_처음.
그때는 정말 몰랐다.
그 폴더 이름을 나중에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될 줄도, 그날의 짧은 만남이 내 계절 하나를 통째로 바꿔 놓게 될 줄도.
다만 분명한 건 있었다.
이수아라는 이름이 그날 이후로, 생각보다 오래 내 안에 남았다는 것.